뉴욕으로 이민 온 친구 KBS 성우 오혜영씨는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야 너도 같이 돌아가자. 우리처럼 편하고 좋은 방송국 생활을 버리고 왜 미국에서 생고생을 해야 하냐. 너나 나나 수입도 탄탄한데 왜 여기서 살아야 하냐” 그러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해 시원한 대답을 못하고 그에게 “어쨌든 미국에 잘 왔다. 일단 좀 쉬고 난 다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래도 그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돌아가겠다고 한 후 나에게 “너는 어떠냐 미국이 살만하냐”고 물어 “장사도 잘 되고 마음도 편하고 아이들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어 좋다”고 하니 그는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해 아무 때나 오라고 한 후 전화를 끝냈다.
오혜영씨는 KBS 라디오 성우로 TV 영화녹음을 많이 해 수입이 좋았고 부인은 고등학교 선생이었다. 탤런트와 성우는 출퇴근이 따로 없는 자유 직업이다. 라디오 드라마, TV 드라마, 그리고 영화녹음이 끝나면 자유시간이 많은 인기 직업이다. 당시 경제적 사정이 최하였고 미래가 불투명했지만 그와 나는 수입이 좋아 살만했다.
우리는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고충을 잘 모르고 복에 겨워 새로운 떡이 맛있게 보여 경솔하게 이민을 선택했는지 모를 일이다. 시간이 많은 자유 직업인 우리는 당구장, 다방, 사우나를 드나들고 포커나 마장 아니면 낚시와 유명 술집을 누볐다.
그렇게 살던 그가 부인의 가족이 미국 시민권자라 대망의 꿈을 안고 이민을 선택했다. 그런데 뉴욕에 도착하니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복잡하고 생소한데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아 질려버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 내게 함께 돌아가자고 한 것이다.
일주일 후 우리 집에 오겠다고 연락이 와 메이컨 비행장으로 달려가 서로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다음날 조지아 인근 도시를 함께 돌아보면서 그에게 어렵게 이민을 선택한 이상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자고 하면서 자유경제 대국인 미국은 지하자원도 풍부한 기회의 나라라고 설득하며 그를 위로했다.
사실 나는 미국땅에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고 외로워 뉴욕에서 자리를 잡던지 아니면 시골로 내려와 함께 살자고 했다.
다음 날 뉴욕으로 돌아간 그는 생소한 야채장사를 하면서 사시사철 새벽같이 도매상으로 달려가 싱싱한 야채를 구해다 부인과 함께 파는 피나는 노력을 다 한 끝에 자립에 성공한 후 세탁업을 시작하고 뉴욕 세탁협회장과 전 미주 세탁협회 초대회장과 뉴욕 실업인 협회 회장 등을 엮임하고 신문에 기고를 하는 등 코리언 아메리칸의 꿈을 키우는 일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그는 뉴욕 평통위원으로 나는 애틀랜타 평통위원으로 서울에서 자주 만나 회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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