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백인 여성들이 옷을 훔쳐 간 것을 안 후 사람을 인종과 외모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처음 시작한 가발장사는 잘됐고 직장생활보다 훨씬 편하고 수입도 좋았다.
생활의 여유가 생겨 한국 친지들과 친구들에게 미국 소식을 자주 전했다. 미국에는 주말에 장사가 잘 된다. 토요일은 일주일 중 최고의 날이다. 그 때문에 토요일은 정신없이 바쁜 날이지만 우리 부부는 힘이 들어도 신이 나고 즐거웠다.
미국은 역시 좋은 나라인 동시에 기회의 나라인 것 같다. 나같이 미국 문화와 정서도 잘 모르는 이민 초년생이 쉽게 장사를 하고 돈을 벌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한 나라다. 미국에서 편하게 장사를 하며 살게된 현실이 꿈만 같다.
그동안 도와준 유흥주씨와 뉴욕 최원용씨에게 감사를 드리고 보살펴준 이민 선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10월이 지나자 최원용씨가 크리스마스 장사가 연중 최고의 대목이니 그리 알고 물건을 많이 준비해놓으라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바쁜 토요일 멕레이로 이민 온 간호사 S씨 부부가 찾아왔다. 매주 토요일 찾아온 그들은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
소도시 Dublin 인근에 사는 한인은 닥터 정 가족과 국제 결혼한 분 2명과 간호사 3명인데 그들과 가족처럼 정답게 지냈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의 고충을 잘 몰랐다.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문화도 모르는 힘든 처지인데 일부 미국 학생들로부터 “칭 총 챙” 등 갖은 야비한 방법으로 인종 차별을 당하며 겪은 고통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에 와서 학교에 대한 불만을 토로 한 적이없다.
왜냐하면 부모가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이었고 부모들의 어려움과 고충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린 그들이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고 감래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어쨌든 세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잘 해주었다. 수 많은 이민 1세들이 자녀들 교육때문에 이민을 왔다고 하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의 고충과 힘들고 어려운 실상을 잘 알고 이해하며 미국 학교에 대한 교육방법과 인종차별에 대한 중대한 문제 등을 잘 알고 도와 준 부모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민 3개월 만에 소도시 Dublin, GA에다 가발가게를 내고 장사를 하다가 Louisiana, Houston, Atlanta로 이사를 다니면서 생존경쟁을 위한 수 많은 아리랑 고개를 넘으며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살아온 어려운 상황에도 아이들이 전문대학원까지 졸업을 하고 모두 다 전문직을 잘 수행하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는 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손님들과 하루종일 씨름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즐겁고 행복하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미국생활이 편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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