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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나는 해병이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9-07-11 21:21:40

칼럼,투고,김건흡,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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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인생은 수많은 선택들의 총합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크건 작건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첫째로 내가 ‘해병’이 된 것을 꼽는다. 나는 한국 해병대에서 5년간 복무하고 대위로 전역했다.  사병으로 가면 2-3년이면 병역의무를 마칠 수 있는데 그 두 배를 군대에서 보냈으니 어쩌면 나는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학업을 마치면 당연히 군대에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병역기피는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왕 군대에 갈 바에야 강한 군대에 가자!  해병대 생활 5년이 나 개인에게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체험이었고, 또 이것이 내 인생의 밑거름과 자산이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 80대의 노인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해병대는 나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나는 해병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해병대 복무 중 나는 선배들로부터  피땀 흘려 쌓아올린 ‘무적해병’신화를 귀가 아프게 들었다. 6.25 전쟁 중 도솔산 전투는 원래 미 해병대가 맡았던 전투였다. 도솔산은 강원 양구의 중동부전선에 위치한1148고지로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곳이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도솔산 점령 임무가 갑작스럽게 한국 해병대로 바뀌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미 해병대가 도저히 이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며 발을 뺐기 때문이었다. 미 해병대가 도솔산 전투를 포기한 이유는 도솔산이 워낙 험준할 뿐만 아니라 그곳을 방어하던 북한군이 좁고 가파른 암석지대에 지뢰를 묻고 수류탄과 중화기를 배치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요새화함으로써 이를 공략해야 했던 미 해병대는 처음부터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 해병대가 그런 인명 손실을 내고도 도솔산 전투를 도저히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도솔산 점령 임무는 미 해병대에서 한국 해병대로 바뀌었다.

미 해병대와 교대해 도솔산을 점령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한국 해병대는 어안이 벙벙했다. 세계 최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 해병대가 포기한 도솔산 점령을 화력과 장비가 미군에 비해 월등히 부족한 한국 해병대가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해병대는 필사의 결의를 다지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김대식 연대장은 “미 해병대가 못한 일을 기필코 해냄으로써 한국 해병의 기개를 보여주자!”며 움츠려있던 부하 장병들을 다독였다. 공격계획도 꼼꼼히 점검했다. 공격개시선에서 최종목표인 도솔산에 이르기까지 미 해병대가 이미 선정해 놓은 24개의 목표들을 하나씩 검토했다. 

1951년 6월 4일 해병대는 공격작전을 개시했다. 해병대는 6월 20일까지 17일간, 험준하기로 이름난 도솔산의 가파른 능선 자락을 기어오르며 피와 땀으로 얼룩진 혈전을 치렀다. 인명 손실이 많은 주간공격이 막히자, 6월 11일부터는 야음을 이용한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적의 철조망과 험준한 산악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적의 시야기 가려진 틈을 이용한 야간작전이 주효했다. 여기에 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고 아군 희생을 줄이기 위해 특공대도 운용했다. 적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서 싸우려면 그들보다 더 높은 고지를 점령해야 했다. 특공대원들은 대검 한 자루와 수류탄 두 발을 들고 오로지 전우애와 애국심에 의지해 낮은 포복으로 전진해 목표를 하나씩 공략해 나갔다. 이때 소대장들이 앞장서 지휘했다. 병사들은 그런 소대장을 따라 적진으로 돌진했다. 목숨 같은 것은 생각지 않았다. 전우를 살리고 부대의 승리를 위해 헌신했다.

그렇게 견고하기만 하던 북한군의 방어진지도 해병들의 목숨을 건 투혼에 하나둘씩 무너졌다. 고지를 빼앗을 때마다 해병들의 만세 소리가 능선을 타고 골짜기에 울려 펴졌다. 대신 해병대가 스쳐간 능선과 골짜기에는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다. 이 곳 저 곳에 쓰려진 해병대원들의 시신들이 벌목장의 나무토막처럼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 수가 수 백 명에 이르렀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대대장·중대장·소대장들도 총상을 입고 여기저기서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은 후송을 거부한 채, 이를 악물어가며 부대를 지휘했다. 해병대는 도솔산에서 모두 그렇게 싸웠다. 그렇게 해서 한국 해병대는 미 해병대도 포기했던 도솔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해병대의 도솔산 전투의 승리에 군 수뇌부는 물론이고, 이승만 대통령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과 신현준 해병대사령관이 맨 먼저 달려와 승전 축하와 함께 부대표창을 했다. 도솔산 점령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영웅’들을 격려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부대 표창을 하고 ‘무적해병(無敵海兵)’이란 친필 휘호를 내린다. 또 이 대통령은 그날 생일을 맞은 공정식 대대장에게 깜짝 이벤트도 마련했다. 헬기로 생일 케이크를 서울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이 대통령은 태극기와 성조기로 장식된 케이크를 공정식 대대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대통령의 해병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병대가 용맹한 전투로 곳곳에서 승리하자 이 대통령은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에게 요청해 한미 해병대를 서부전선으로 이동시켜 서울 북방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해병대는 이후 서부전선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1년 4개월을 버텼다. 

해병대의 상승 불패 신화는 1950년 8월 경남 창원군 진동리(현 창원시 마산 합포구에서 시작된다. 당시 낙동강까지 밀렸던 국군이 해병대를 앞세워 부산을 압박하던 인민군 6사단 등을 섬멸해 반격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진동리 전투였다. 방호산 사단장이 지휘하는 북한군 6사단은 중공 인민해방군 소속의 한인 부대로서 장제스 정부를 타이완으로 몰아낸 후 마오쩌둥의 지시에 의해 북한으로 가서 인민군 소속이 되었다. 이 막강한 북한군 사단과 마산 진동리에서 맞붙어 대승을 거둔 해병대는 그 공로로 전 부대원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는다. 부대장은 후에 국방부 장관을 지낸 6·25의 영웅 김성은 대령이었다. 진동리 전투의 승리로 인해 한국 해병대에는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명예로운 별칭이 붙게 되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종군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가 진동리 전투에 이어 통영상륙작전까지 성공시킨 한국 해병대의 용맹함에 감탄해 붙인 애칭이었다. 해병대는 강하다. 강한 군대라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맥아더의 말을 빌려 나는 감히 말한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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