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작가 헤밍웨이의 작품 가운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 작품을 책을 통해서건 영화를 통해서건 한 번쯤은 다 보았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파블로는 파시스트 세력의 배후 지도자로서 매우 기회주의 적인 인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군의 군대가 적의 다리를 폭파시키기 직전에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가지고 도주합니다. 진실하고 정직한 아내 필라는 이런 남편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완전히 실망했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도망갔던 파블로가 예상을 뒤엎고 다시 돌아옵니다. 파블로가 돌아온 이유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되어 돌아온 것도 아니고 갑자기 잃어버렸던 애국심이 발동해서 돌아온 것도 아니고 또 아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다시 돌아온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 돌아왔느냐는 동지들의 물음에 그는 단순한 말로 대답합니다. “나는 너무 고독했다” 지금까지 그가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 탈출하여 느끼게 된 혼자라는 소외감이 그를 못 견디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나는 이제 혼자다”라는 감정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작가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 소외의 비극, 인간은 결코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서 표지에는 존 던의 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제일 어려운 것은 그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 속에서 계속해서 살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친구가 바뀝니다. 그리고 예전에 싫어했던 것을 좋아하게 되고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이제는 싫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몸담고 살아왔던 환경속에서 옛날처럼 그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거듭난 사람, 구원받은 사람들은 옛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떠난다는 것이 우리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순간,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시는 순간, 우리를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에 속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회 가족의 일원으로 살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 교회 안에서 한 지체가 되어 그 안에서 함께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언니, 오빠, 형 누나도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한 가족입니다. 그러나 한 가족이라는 말과 그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 됨을 경험하면서 그런 하나 됨을 실현하며 사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형제들 사이에 시샘이 일어나면 그들은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전혀 하나라는 감정을 체험하지 못하면서 뿔뿔이 고독하게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가족이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은 한 가정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애틀랜타칼럼] 서로 하나 됨을 지킵시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7-04-04 19:33:17이용희,칼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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