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수필] 타 타 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7-21 10:24:47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타 타 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유학 왔던 조카가 삼 년 동안 사귄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다. 먼저 한국에 계신 그의 부모에게 알렸다. 학위를 받고 나면 귀국할 것으로 기대했던 부친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혼 계획이 틀어졌다. 가족들을 이해시키고 허락을 받고 결혼하자는 조카의 말에 상대방도 마지못해 동의하는 것 같았다. 

결혼허락이 점점 지연되는 동안, 교제하던 중에 몰랐던 사실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알려 주었던 생활환경이나 가족력 및 학력 등 많은 것들이 거짓이었다. 하지만,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조카는 어린 나이에 이민 와서 힘들게 사느라 생긴 열등감 때문이라며 상대를 감싸주었다. 자신 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주위의 만류를 꿋꿋이 버텨내는 조카 덕분에 결혼전선에는 변함이 없는 듯했다. 

한국에서 생활비 송금을 끊어 버렸다. 그때까지 안정된 직업이 없던 조카가 생활에 쫓기기 시작하자, 상대의 본심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혼을 통해 금전적 풍요로움을 좇으려는 그의 허영심과 낭비벽을 뒤늦게 깨달은 조카는 결혼을 조금 미루자고 했다. 그러자 상대가 모습을 감춰버렸다. 갑자기 사라진 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 후 조카는 결혼이 깨진 것을 슬퍼하기 보다는, 상대를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자신의 무지를 자책하느라 한동안 침울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다'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할 때, 그의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이름, 나이, 직업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습관과 말투를 아는 것일까? 사실 그가 깊은 밤 혼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알 수 없다. 정작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에 대한 내 생각과 내 느낌을 믿는 것이니 결국 내가 만든 평가와 편견을 믿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수 년 전에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테네시 주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독거 노인이 도움을 청했다. 먼 거리라 안전 운전을 고려해서 택시를 불렀다. 그의 택시회사 이름에 걸맞게 번개처럼 달려온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대 여섯 시간의 거리를 왕복하는 동안, 그의 형편을 알게 되었다. 노모와 두 딸을 돌보는 이혼남이라 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해서 팁을 두둑하게 주었다. 며칠 후 그가 모친이 만든 깻잎 장아찌와 고추 조림을 들고 찾아왔고, 그렇게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창백한 낯빛으로 그가 찾아왔다.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삼천불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 하필 나를 택했을까 의아했지만, 그의 노모와 엄마 없는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장에 체크를 써 주었고, 그 후 그는 사라졌다. 그가 노름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곳은 단골 미용실이었다. 카운터 위에 있는 택시 명함들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번개택시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원장님도 당했어요?” 되물었다. “안다”라는 것은 결국 내가 상대에게 부여한 환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삼천불에 배운 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가끔 나는 나 자신조차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내 능숙함에 스스로 놀랄 때도 있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로 나의 낯선 면을 알게 될 때 신기해서 혼자 웃기도 한다. 가수 김국환이 부른 '타타타'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랫말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네가 나를 모르는 데/난들 너를 알겠느냐/한 치 앞도 모두 몰라/다 안다면 재미없지/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그런 거지.” 

노래 마지막 부분에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나오는 것 때문에 한 번만 들어도 쉽게 기억한다. 노래 제목인 '타타타'는 ‘여여(如如)’라는 불교용어다. 여여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보는 것, 즉 사사로운 의견이나 개인의 판단력에 상관없이 그 실체를 왜곡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맞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침묵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것이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다. 그가 가진 정보나 눈에 보이는 환경을 통해 가늠하면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동행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곁의 사람들을 조금 더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섣불리 규정하지 않으며, 늘 열린 마음으로. 타 타 타!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뉴스] 애틀랜타 성인물 소비 1위 도시 선정, 월드컵으로 애틀랜타 단기임대 숙소 급등, 해외송금 10만달러로 제한, 조지아의 다양한 뉴스부터 애틀랜타 한인 사회 동정까지! (영상)
[애틀랜타 뉴스] 애틀랜타 성인물 소비 1위 도시 선정, 월드컵으로 애틀랜타 단기임대 숙소 급등, 해외송금 10만달러로 제한, 조지아의 다양한 뉴스부터 애틀랜타 한인 사회 동정까지! (영상)

12월 둘째 주 애틀랜타 이상무 종합 뉴스는 꼭 알아야 할 조지아의 다양한 소식부터 애틀랜타 한인 동포 사회의 동정까지 전해드립니다. 맞춤형 성인물 소비 1위 도시로 선정된 애틀랜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8] 구르는나무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8] 구르는나무

이성열 사막을 가로질러 기어가듯이데굴데굴 구르는 나무를 보고비웃거나 손가락질하지 마어떤면에선 우리의 삶도거꾸러져 구르는 나무 같지짠물 항구도시 인천에서 태어나아버지를 따라 무논과

자동차 장기 융자, '84개월 할부의 두 얼굴'
자동차 장기 융자, '84개월 할부의 두 얼굴'

자동차 할부 1/4이 72개월 이상네거티브 에퀴티 문제 유의해야 자동차 딜러십에서 "차량 가격은 걱정 마세요. 월 페이먼트를 원하시는 금액에 맞춰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GSU, 새 야구장 곧 착공…새 스포츠 명물 기대
GSU, 새 야구장 곧 착공…새 스포츠 명물 기대

구ATL-풀턴 스타디움 부지2026년 가을께 완공 목표  조지아 주립대(GSU)가 구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부지에 추진 중인 새 야구장 건설 공사가 곧 착공된다.GSU는

[행복한 아침]  겨울 안개

김 정자(시인 수필가)       이른 새벽. 안개에 둘러싸인 도심은 마치 산수화 여백처럼 단정한 침묵으로 말끔하고 단아하게 단장 되어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만상은 화선지에 색감을

대큘라 HOA 주민에 벌금 40만 달러 부과 논란
대큘라 HOA 주민에 벌금 40만 달러 부과 논란

마당의 낙엽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 등 귀넷카운티 대큘라의 한 서브디비전 HOA((주택 소유주 협회)가 마당의 낙엽을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총 40만 달러가 넘는 벌금을 부과

'올해의 교사' 출신 교사, 학생 구타 혐의 해고
'올해의 교사' 출신 교사, 학생 구타 혐의 해고

폭행교사 해고 후 체포 조지아주 록데일 카운티의 전 '올해의 교사'가 13세 학생을 신체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학생 측 변호인단에 따르면, 코니어스중학교 멜빈 맥클레인 교사

교통위반 웨이모 처벌…조지아는 ‘회색지대’
교통위반 웨이모 처벌…조지아는 ‘회색지대’

잇단 스쿨버스 추월사례 불구규정미비로 솜방망이 처벌만 애틀랜타에서 운행 중인 웨이모 자율주랭차량의 잇단 정차 중 스쿨버스 추월 사례로 교통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이를 규제하거나

택배물건 훔치던 청소년에 총 쏜 집주인
택배물건 훔치던 청소년에 총 쏜 집주인

무력 정당성 놓고 논란 확산 애틀랜타의 한 주택단지에서 택배물건을 훔치려던 청소년 두 명이 집 주인이 쏜 총에 맞아 부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재산 보호를 위한

애틀랜타 월드옥타 송년회로 한 해 마무리
애틀랜타 월드옥타 송년회로 한 해 마무리

스타트업과 차세대 육성으로 명성이사장 리처드 한, 차세대 애나 유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월드옥타) 애틀랜타지회(회장 썬 박)는 11일 스와니 엔지니어스(N-GINEERS) 사옥에서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