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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곰과 여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6-16 08:30:0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곰과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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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천식 증상으로 위급해진 정 할머니를 응급실로 보냈다. 응급처치가 끝난 후 며칠 더 살펴보자는 의사 의견에 따라 일반 병실로 옮겼다. 사는 동안 많이 겪어본 상황이라며 곧바로 집으로 가겠다는 할머니를 겨우 달래서 이 삼 일만 있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안심시켜놓고는 돌아왔다. 

 

다음 날 오후, 할머니가 입원한 병동에 들어섰는데 “아 아 아 아 아!” 마치 깨진 유리 조각들을 밟은 사람이 지르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복도에 울리고 있었다. 뭐 야? 언뜻 들어도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정 할머니였다. 숨이 딱 멎은 채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어제 내가 병실을 떠난 후부터 줄곧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게 간호사의 대답이었다. 어제 아침 입원할 때까지도 호흡이 힘든 것 외에는 말짱했었는데 하루 밤사이 뭐가 잘못되었을까? 

 

병실로 뛰어들다시피 하는 나를 본 할머니가 한순간에 비명을 딱 그쳤다. “할머니, 왜 그래요?” 물었더니, “집에 가고 싶어서 미친 척 했어.”라는 대답이었다. 그 앙큼한 발상이 귀엽기도 해서 처음엔 크윽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할머니의 계략은 집요했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온 간호사를 보자마자 또다시 돌변했다. 베개 밑에서 종잇조각을 꺼내더니 금괴라면서 손에 쥐어 주었다. 선물로 주는 것이니 잘 간직하라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덜컥 겁이 났다. 저러다 정신병원으로 이송되면 어쩌려고 저런 생 쇼를 하시나? 

 

할머니가 아무리 꼼수를 부려도 나는 퇴원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양로원에서 십 년 넘게 같이 살았어도 결국 남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주에 사는 할머니 딸에게 전화를 넣었다.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니 “울 엄마 진짜 여우네.”하며 숨넘어갈 듯 까르륵 웃어 젖혔다. 당장에 할머니를 퇴원시키라고 병원에 엄포를 놓았는지 수속이 일사천리였다. 퇴원 서류를 읽어 보니, 항정신성 약물 처방이 들어있었다. 할머니의 할리우드 액션에 의료진 모두 깜빡 속았던 모양이었다. 양로원에 돌아오자마자 할머니는 내 집이 최고라면서 단잠에 빠졌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나는 노인들의 성품을 곰이냐, 여우이냐, 대략 이 두 가지로 나눈다. 15년 동안 양로원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터득한 결과다. 물론 사람의 외모를 비하하는 표현은 절대 아니다. 곰과 여우의 대조적인 생존 방식을 우리네 삶에 인용할 뿐이다. 곰은 묵직하다. 겨울잠을 자고 느릿느릿 세상을 맞이한다. 자연의 힘과 인내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여우는 민첩하다. 꾀를 부리고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선 지혜와 교활함으로 재빠르게 기회를 포착한다. 

 

양로원 노인들의 사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상황극을 벌인 정 할머니의 모습은 여우다, 하지만 할머니의 평상시 모습은 남을 돕고 양보하고 규칙도 잘 지킨다. 자신이 뭔가 필요할 때는 아양을 부리기도 하고, 가끔은 로또를 구입해 놓고는 백만 불 당첨이 되면 나눠주겠다며 호기를 부린다. 그런 모습을 보면 단연코 느긋한 곰의 모습이다, 허언일지라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그런 걸 보면 여우같은 정 할머니가 곰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이 가장 노년을 즐기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생존의 방식이 서로 다른 곰과 여우, 어느 모습이 더 좋은 삶일까? 곰처럼 느긋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현명할까? 아니면 여우처럼 재빠르게 기회를 포착하는 게 지혜로운 걸까? 노인들을 돌보는 직업을 갖고 사는 덕분에 그들의 모습에 나를 대입시켜볼 때가 자주 있다. 나는 곰일까? 여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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