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핑크색은 어린아이의 뺨 남쪽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입니다. / 회색은 어깨에 두른 목도리이며 / 갈색은 낡은 손 / 따뜻하고 친절한 나뭇잎 / 그리고 고목나무의 줄기입니다. / 라일락은 입을 맞추는 사랑스런 얼굴입니다. / 그리고 노란색은 태양입니다. / 풍성한 삶을 약속합니다. (시, 헬렌 켈러, 70세 고희에 쓴 시)
헬렌 켈러의 ‘견성 기도’는 글자 그대로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기도 시이다. 헬렌 켈러는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저 너머의 영원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靈眼)을 지닌 여인이었다. 헬렌 켈러의 영안(SPIRITUAL EYE)은 멀쩡한 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깊고 깊은 '영적인 세계'이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볼 수 없는 이 세상 너머에 영안이 열려 영혼의 세계를 노래한 그녀는, 육의 눈은 단지 하나의 점일 뿐 내 영혼의 눈은 혼과 육이 넘나드는 하늘이 열려 있다고 고백한다.
''내 영혼의 눈이 열려 그대를 보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냈소.'' 육(肉)을 지닌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영혼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하늘의 축복 아니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현상의 세계 저 너머에 있는 영혼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지 않고는,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하늘나라는 꿈의 나라에 불과하다.
지구별의 4월은 너무 아팠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신의 뜨거운 가슴 아니고는 존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구나—
아픔투성이의 지구별에도 오늘 '부활'은 오는가? 사람 아닌 기계들이 인간의 가슴에 들어와 인간이 로봇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나는 항상 휘청거린다. 소경이 아닌 나는 왜 그날의 감격, 그 부활의 새 아침을 잊고 사는가? 볼 수 없는 헬렌 켈러의 그 찬란한 봄은 어디로 갔는가? 눈 뜨고도 볼 수 없는 우리가 눈먼 자들이 아닌가?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긴긴 겨울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나무마다 맑디맑은 영혼의 웃음소리, 흔들리는 생명의 소리를 듣고 쓴 헬렌 켈러의 기도가 부활의 아침 내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그날, 부활의 새 아침, 예수를 따르던 자들은 소경이요, 절름발이요, 길에 버려진 자들이었다. 오늘 나도 그날의 부활의 감격에 마음 활짝 열어 놓고 싶다.
가파른 언덕 너머/ 긴긴 겨울 추위에 떨면서/ 먼 길 달려왔구나/ 네가 곁에 있어/ 마냥 설레는/ 나의 작은 가슴/ 활짝 열어 놓을게/ 어서 네 안으로 들어와/ 네 연둣빛 생명의 기운으로/ 이 봄 내 가슴을 물들게 하라 (시인 정연복)
두 눈을 뜬 우리가 오늘 그 존재의 본성을 꿰뚫을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을까-- 4월, 그 부활의 감격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내 육신의 눈이 열려 신들린 혼을 지닌 내 영혼이 맑은 영혼의 새 옷을 갈아입고 4월의 신부를 맞이할 수 있을까--
그 부활의 감격을 오늘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오늘 지구별은 너무 아프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산산이 쪼개진 가슴들. 멀쩡한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불신의 오늘을 산다.
육신의 저 너머-- 육신의 아들이 아닌, 영안이 열려야만 볼 수 있는 부활의 새 아침은 그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날은 육신을 떠나 영혼의 아들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눈먼 자의 부활을 우린 오늘 기다리는가-- 그날은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 영원을 약속하신 것인가.
삶은 오늘이다. 날마다 하루하루는 영원한 오늘이다. 길 위에서 길을 잃어도 다시 일어나 고백하며 산다. 나는 길에서 넘어지면 다시 길을 딛고 일어나리라.
헬렌 켈러처럼 내 영안이 열려 노래하리라. 출렁이는 그 기쁨, 그 자유함. ''행복은 아주 단순한 거예요.''
흔들리는 혼의 세계, 하늘 내리신 부활의 새 아침. 나, 영혼의 축복. 하늘 내리신 새 생명 선물. 맑은 새 영혼의 새 옷 갈아입고 부활의 새 생명으로 오늘 나 다시 태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