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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철들 무렵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28 08:24:45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철들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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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우연히 오랜 친분이 있는 분들을 음식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에 두 손을 잡고 어린 아이처럼 깡충대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문득 ‘나 이제 철 들었어’ 하신다. 그리 쉽지 않은 고해성사 같은 말씀을 하신다. 두 손을 힘주어 잡아 주었다. 무언으로 다정한 눈빛을 주고 받으면서 둘 사이에 보이지 않던 벽이 허물어져 버렸다. 이즈음 흔히들 ‘너무 가깝지 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최상이다’ 라는 경우가 많다. 함부로 다그치듯 반응을 요구 하지 않는 우정’ 이라고 말할 만큼 시대적 모순이다. 인간관계는 관심을 주고 받는 기초 석이 든든해야 관계가 실하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서로 처지를 바꿔 생각해 주기를 바라게 되는 게 인지상정인데 필자만 느끼게 되는 것인지 정이란 따스함이 조금은 계산적인 것으로 변질되면서 차츰 냉각되어가는 흐름을 감지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옛정만 못 하다는 결론이 나지만 어쩐지 아련한 아쉬움이 남게 된다.

식사를 끝내고 커피타임을 가지자고 카페로 자리를 바꾸어 가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수다는 이어졌다. 반가움을 제대로 삭이기에는 역시 수다 밖에 없는 듯 하다. ‘철 들면 안 되는데, 철들 무렵이면 노망든다는 말이 있는데’ 하시며 앞뒤 정황을 모르시는 분이 거들고 나섰지만 우리는 이미 철 없이 쌓아 두었던 벽이 허물러 졌다는 사실에 묵은 체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기적을 맛보았다. 제법 오랜 시간을 뵙지 못했던 아쉬움을 상쇄하려는 듯 할머니들의 수다는 끝 모르게 이어진다.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철들자는 주제로 이런 저런 대화 주고 받기에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다 결국 저녁식사로까지 이어지면서 하루 종일을 보냈던 그날이 문득 떠올라 슬며시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이 들어가면서 철이 제대로 들어가는 건지 혹여나 하는 노파심으로 매사에 거품빼기를 하자고 들여다보니 군데 군데 거품 흔적이 보인다. 일상의 구석진 곳에 숨어있던 거품을 찾아가며 거품 걷어내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철들기 과정으로 삼자고 마음 다짐 끝에 돌아보니 한결 세상살이가 가뿐해지고 편안해 진다. 거품이 빠져버린 삶이야 말로 진정한 내 모습인 것을, 세상은 겉모양 허울 허식 겉치레에 열중한 나머지 겉모습이 우선 순위가 되어 버렸고 내실에는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다. 실속 없는 겉모양, 허울 뿐인 다짐들이 붐을 일으키듯 성행하고 있다. 허물만 근사하면 그만인 세상이다. 텅 빈 겉껍질 뿐인 허깨비 같이 허울좋은 실존의 허상이 거품을 조장하고 있다. 삶을 올곧게 살아온 인생은 바르고, 맑고, 순수하고, 매사 선명하다. 보여주기식으로 사는 것이 아닌, 사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주변 눈치보기에 고심할 까닭이 없음은 물론이요, 먼저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음에 떳떳할 수 있다. 잘 살고 있는 양 좋은 모습으로 보이려고. 잘난 체 하려는 우쭐대는 자만심 충족을 위해 스스로를 닦달하고 옭아매며 살아야 하는 구속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 더는 내 세울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삶이야 말로 홀가분한 삶이요, 삶의 진국을 맛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내가 아닌 가짜 인생에서 진짜 인생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은 참 모습을 보일 때 철들었다고 인정해주기도 하니까.

이렇듯 차원있는 삶을 추구하노라면 언젠가 철이 들어있을 것 같은 희망을 엿보게 된다. 겨우 한 뼘 잘났음을 강조하느라 소중한 정을 잃어버리는 일은 범하지 않아야 할 터이다. 하기야 제일 힘든 싸움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이기든 패배하든 결과는 오롯이 자기 몫이 되고 만다. 수 없이 번복되는 후회로 뉘우치고 되돌려 보려 하지만 본성이 버티고 있는 한 자신을 감당해 내기는 만만치 않음이다. 다행인 것은 민폐 수준 까지는 덤비지 않았음에 그런대로 자신을 잘 다스려온 셈이 된다. 그냥 생긴대로 주어진 부피와 높이와 깊이 만큼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해두면 되는 것인데.

철들 무렵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생을 살만큼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노년층에게는 한계 용량초과일 수 밖에. 바람직한 철들기는 아직이지만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는 내면의 고요가 생의 여정이 남긴 재고처럼 숨쉬고 있다. 

늙음과 시듦으로 갈수록 말은 줄어들고 있지만 살아온 날 동안 글을 다듬고 나누기에만 몰입했는데 이젠 고요가 말을 한다. 철들지 않은 채 지금처럼 살아가라 한다. 하지만 꾸준히 철들어 가자고 다짐을 하게 된다. 철들기 추대받기로부터 철들기 옹립을 받기까지는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철들 무렵은 수열의 극한과 무한대처럼 한계 없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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