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성경 보면 용서하는 마음 생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기독교적 용서의 의미를 다룬다. 주인공(전도연 분)은 아들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지만 이미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마음이 바뀌어 ‘시험’에 든다. 기독교인들에게 용서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과 도전을 던진 영화다. 기독교인들은 용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경험이 있을까?
기독교 연구기관 기독인문학연구원과 이음사회문화연구원이 기독교 여론조사기관 목회데이터연구소와 함께 한국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용서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기독교인은 가해자를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가족을 죽인 가해자를 신앙적 이유로 용서하겠다는 피해자 가족 모임인 용서 프로젝트가 있다. 응답자들에게 용서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하는지’와 ‘만약 나라면?’이란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개신교인인 응답자 중 약 44%가 ‘기독교인이라면 신앙적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이해할 수 없다(36%)는 응답자보다 많았다. 그러나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9%가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응답이 ‘용서할 수 있을 것’(12%)이란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가해자의 행위에 따라서 개신교인의 용서에 대한 생각이 다르게 나타났다. 많은 개신교인이 용서할 수 없다고 못 박은 행위로는 성희롱(76%·여성 응답자 기준), 사기(75%), 물리적 폭력(75%), 모욕감 준 사람(63%), 직장 내 갑질(61%), 거짓말(40%) 등을 주로 꼽았다.
용서 경험을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약 83%가 성인이 된 후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용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63%는 진심으로 용서했다고 한 반면 37%는 그냥 형식적으로 용서하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용서를 왜 해야 하는지를 알고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다. 용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58%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용서를 했고 46%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크리스천다운 삶이라는 생각에 용서했다고 밝혔다.
이번 설문조사는 종교가 용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파악했다. 응답자 중 63%는 ‘타인과 갈등이 생겼을 때 기도를 하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긴다’라며 종교와 용서의 상관관계를 인정했다.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 간 용서 행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약 57%가 두 집단 간 용서 행위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반면 응답자 39%는 개신교인이 비개신교인보다 용서를 잘 한다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미국 성서 공회’(ABS)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성경을 읽으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ABS가 미국 성인 2,598명을 대상으로 ‘성경 읽기’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 조사에서 92%의 응답자가 ‘성경 속 메시지가 내 삶을 변화시켰다’라는 데 동의했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타인에 대한 용서였다.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 평생 증오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불행한 삶을 살기 쉽다. 심지어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질병까지 얻기도 하는데 성경을 통해 남을 용서하고 삶에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 사용자 중 말씀 묵상과 실천을 생활화하는 ‘성경 중심적’(Scripture Engaged) 교인 중 93%는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타인이 용서를 구한 것과 상관없이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다’는데 동의했고 이 중 47%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 준 최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