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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푸틴의 마지막 카드… 핵보다 에너지

글로벌 | | 2022-03-03 08:36:53

궁지에 몰린 푸틴의 마지막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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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의 ‘중앙은행 제재’에

푸틴은 핵부대 경계태세 강화

서방, 핵경고 이후 추가 제재 멈칫

 

 영국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 맞은편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진 시위대가 시위대를 들고 있다. [로이터]
 영국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 맞은편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진 시위대가 시위대를 들고 있다. [로이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인 지난달 27일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향해 의외의 카드를 던졌다. 경제 핵폭탄으로 불리는 2개의 금융 제재였다. 먼저 하루 6조 달러가 거래되는 국제금융결제망에서 러시아를 제외키로 했다. 돈을 주고받을 수 없게 만들어 러시아의 대외교역을 꽉 틀어막은 조치다. 러시아의 금고인 중앙은행에는 해외 금융기관에 예치한 보유외환을 동결시켰다. 서방 제재에 대비해 미리 쌓아둔 6,300억 달러 중 무려 4,000억 달러를 꺼내 쓸 수 없도록 했다.

 

세계의 관심은 러시아의 대응에 몰렸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은 계속해 제재 수위를 높여왔다. 거세지는 압박에도 러시아는 맞대응하지 않았지만 이번 금융폭탄의 파장은 전혀 달랐다. 서방은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에 대한 중앙은행 제재로 파산지경에 빠뜨린 바 있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의 카드리 리크 정책위원은 이날 “이번 조치를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면 러시아는 자신이 우위에 있는 수단을 선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리크의 예상대로 얼마 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핵 부대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한 소식이 발표됐다. 경고를 위한 푸틴의 선택은 유럽에서 전략적 우위에 있는 핵이었다.

 

푸틴의 핵 카드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긴장완화의 신호란 정반대 해석처럼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미국, 유럽의 추가 제재가 푸틴의 핵 경고 이후 멈칫한 것은 공교롭지만 사실이다. 푸틴이 핵 카드를 꺼내면서 향후 긴장을 높여갈 어떤 카드라도 쓸 수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핵처럼 푸틴이 서방의 전면 제재에 대응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밸브를 잠그는 에너지 무기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한목소리로 경제전쟁의 예외로 에너지를 외치고 있다. 푸틴은 에너지 공급을 지속하겠다고 밝혔고, 바이든은 경제제재에서 에너지는 제외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상황이 어느 한쪽의 기대대로 풀리지 않으면 에너지 무기 카드를 사용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데 있다.

 

불안을 키우는 또 다른 배경에 러시아와 서방의 대화 방식이 다른 문제도 있다. 냉전 시절, 특히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과 소련은 ‘레드라인’을 서로 이해하고 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푸틴의 발언마저 희화화되는 게 사실이다. 친푸틴 싱크탱크인 러시아국제문제위원회(RIAC)는 “오늘날 레드라인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아니라 허황된 수사나 과장된 말로 상대에게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의 경우 에너지 무기는 향후 에너지 공급에서 중요한 신뢰를 허무는 것인 만큼 쉽게 선택하긴 어렵다. 원유와 천연가스는 러시아의 대(對)유럽 경제 지렛대라서 이를 유지하는 쪽이 장기적으로도 유리하다. 대체 수요지인 아시아 수출용 송유관은 완공되지 않았고, 계절적 수요가 줄어드는 것도 에너지 무기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사만다 그로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안정된 에너지 공급자란 위상이 흔들리는 러시아가 이런 선택을 하면 전쟁 이후 신뢰 회복이 어렵다”면서 “그러나 푸틴의 호전적 발언으로 볼 때 이를 배제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반대로 미국과 유럽이 에너지를 보이콧(거래중단)하는 것은 러시아의 목줄을 죄는 효과가 크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모든 방안이 제재 테이블 위에 있다면서도 에너지 시장에 타격을 입힐 의도가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아모스 호치스타인 국제에너지 특사 역시 제재는 미국과 유럽 소비자 타격을 최소화하고 푸틴에게 고통을 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러시아 원유를 서방이 제재하면 전체 원유 수출량의 절반이 대상이 되겠지만 푸틴은 유가 폭등으로 절반의 원유로 동일한 수입을 올리게 된다. 의도와 반대로 푸틴이 아닌 미국과 서방의 소비자가 에너지 제재의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에너지 가격상승은 바이든 정부의 하반기 중간선거에도 악재다. 서방 입장에서 푸틴에 대한 응징은 오히려 원유 수급을 안정시켜 유가를 하락시키는 데 있다.

 

컨설팅업체 클리어뷰 에너지파트너는 결국 서방이 아닌 러시아가 에너지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설비보수, 군사공격 피해, 서방의 사이버 공격의 명분을 내세워 에너지 공급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다. 드미트리 메드베테프 전 대통령이 독일의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제재 직후 “유럽은 더 고가의 천연가스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러시아산 공급이 끊긴 에너지 시장의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러시아는 세계 제2의 원유 수출국으로 전체 공급의 12%를 차지하고, 유럽이 필요한 천연가스 35~40%를 공급하고 있다. 천연가스의 기준가인 TTF는 러시아 침공 이후 40% 상승했다. 국제유가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래 가장 높은 배럴당 10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에너지도 제재의 파장이 미칠 것이란 불안감이 악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원유시장이 작은 악재에도 민감한 근본 이유는 수요 초과에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2월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하루 원유 수요는 공급보다 108만~195만 배럴이 많은 9,383만~9,977만 배럴에 달했다. 올해 들어선 수요가 9,913만~1억292만 배럴로 늘어나 부족한 원유는 하루 280만~300만 배럴로 증가했다.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해진 시장에서 러시아 영향력은 높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하루 원유생산이 1,116만~1,188만 배럴로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3위다. 그러나 러시아의 원유 소비는 하루 360만 배럴에 불과해 명목상 이를 제외한 800만 배럴의 수출이 가능하다. 배럴당 100달러로 계산하면 하루 원유대금만 해도 엄청난 규모다. 국제금융결제망을 통한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대금은 하루 6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서방은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 이른바 제2의 철의 장막에 대비하고 있으나 충분치는 않다. 푸틴이 에너지 밸브를 닫을 경우 유럽을 비롯한 세계는 경제와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속도는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만 해도 지난 1월 운송선 120척을 이용해 천연가스를 비축했고 미국산과 중동산도 유럽행을 기다리고 있다.

 

원유의 경우 푸틴의 공급 축소, 수출 중단에 대비해 미국은 주요 국가의 전략비축유 방출, 산유국의 증산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이 증산에 호의적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급해진 미국이 작년 말 5,000만 배럴에 이어 추가로 3,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풀기로 했으나 시장안정책이 될 수는 없다. 바이든 정부가 푸틴 제재 카드를 높이 들기는 했지만 향후 미중 전략적 경쟁까지 감안해 신중론으로 회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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