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땅’ 시베리아가 불타고 있다. 울창한 숲은 화마의 먹이가 됐고, 도시는 산불이 토해 낸 매캐한 연기와 유독가스에 점령당했다. 한마디로 질식 직전 상태다. 이번 시베리아 산불은 단지 삼림을 잿더미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사상 최악의 대기오염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특히 러시아 극동연방지구 사하공화국(야쿠티야) 수도 야쿠츠크를 덮친 화염은 ‘대재앙’ 수준이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까지 사하공화국에서 산불 250건이 발생해 5,720㎢를 태웠다. 룩셈부르크의 약 2배 면적이다. 미항공우주국 위성에서도 거대한 연기 기둥이 관측된다고 한다. 야쿠츠크와 인근 마을 50곳은 연기로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다. 현지 재난당국은 주민 32만 명에 외출 금지령까지 내렸다.
특히 위험한 건 오염된 도시보다도 더 많이 배출되는 유독가스다. 오존, 벤젠, 암모니아, 시안화수소 등 화학물질뿐 아니라 체내에 흡수돼 장기를 손상시키는 초미세먼지(PM 2.5)도 대량 발생한다. 최근 야쿠츠크에선 초미세먼지 수치가 1㎥당 1,000㎍까지 치솟았다. 세계보건기구(WHO) 안전 기준의 40배를 웃돈다.
그나마 대기질이 좀 나아졌다는 이날도 초미세먼지 수치는 395㎍이었다.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중국 베이징과 인도 뉴델리의 연평균 수치(100~110㎍)의 4배에 가깝다. 가디언은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이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급기야 ‘에어포칼립스(Airpocalypse)’라는 진단까지 등장했다. ‘공기(Air)’와 ‘종말(Apocalypse)’을 합친,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대재앙을 뜻하는 신조어다. 한 달째 진화 작업 중이라는 한 지역 주민은 “아이들은 도시 밖으로 대피시켰다”며 “불덩이 옆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인은 두말할 필요 없이 ‘기후변화’다. 야쿠츠크는 한겨울 기온이 영하 50도 이하인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지만, 지구온난화 탓에 여름 기온은 세계 평균보다 2.5배 빠르게 상승 중이다.
산불도 폭염과 가뭄이 맞물린 결과다. 아이센 니콜라예프 사하공화국 행정수반은 “근래 150년 중 가장 건조한 여름을 보내고 있으며, 6월 기온이 관측 사상 최고”라며 “산불은 이런 환경과 매일 내리치는 마른 번개가 결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구 전체에도 파괴적 영향을 끼친다. 유럽연합(EU) 산하 ‘코페르니쿠스 대기 모니터링 서비스’ 관측 결과, 지난달 1일부터 사하공화국 산불로 발생한 이산화탄소 총량은 무려 65메가톤(megaton)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3~2020년 17년간의 평균치를 크게 상회할 뿐 아니라, 지난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산불철이 끝나는 8월 말엔 사상 최악의 기록을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작년 사하공화국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 양은 2018년 멕시코 전역에서 연료 소비로 발생한 분량과 맞먹는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이상 고온은 산불을 일으키며, 산불은 영구동토층을 녹여 그곳에 저장된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선임과학자 마크 패링턴은 “기후변화로 시베리아, 캐나다, 북유럽 같은 북부 한대림에서 화재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대형 화재가 초원 지대에서 연료가 풍부한 숲으로 이동하는 게 전 세계적 추세”라고 우려했다. 그린피스 러시아지부 알렉세이 야로셴코 산림국장은 “산불은 열악한 산림 관리와 취약한 규제, 예산 삭감이 초래한 인재(人災)”라며 “기후 위기가 체감될 정도인데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재앙적 결과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