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늘 함께 있고 이 시기를 함께 견뎌낼 거란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해주고 싶습니다”
패사디나시 매디슨 하이츠 지역 한 주택가의 어느 토요일 오후, 첼로 선율에 실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들려온다. 유모차를 끌고 나선 젊은 부부, 흰 운동화를 신고 달리던 젊은이,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선 강아지, 손자가 타는 자전거를 뒤따라 걷던 커피 머그잔을 든 노부부까지 어느 주택 앞에 잠시 멈춰서 하늘을 보며 숨고르기를 한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악보를 펼쳐두고 첼로를 켜는 한 남자가 보인다. 그리고 바로 옆 창문 너머에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코로나19 극복을 음악으로 치유하고 응원하기 위해 집에서 ‘현관 콘서트’를 열고 있는 한인 첼리스트 김병수 변호사 부부의 스토리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고 23일 LA타임스가 보도했다.
LA 카운티에 자택대피령이 내려진 이후 한달 동안 매 주말 이어진 이들 부부의 콘서트는 어느 새 지역 주민들의 기다림이 됐다. 옆 사람과 6피트 거리를 지키며 거리 곳곳에서 두 사람이 연주하는 클래식 선율에 빠져드는 청중들의 얼굴은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이 가득하다. 늘 함께 있었기에 이 어려운 시기도 함께 이겨나가겠다며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힘이 전해져온다.
이들 부부는 프로페셔널은 아니지만 5세부터 악기를 연주해온 전문 연주가 못지않은 실력가다. 첼로를 켜는 김병수 변호사는 카이저 재단 병원 헬스플랜 법률담당 부사장이고 아내 보니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다.
오랜 세월 LA 필하모닉 공연을 보러 다녔던 이들 부부는 3월 말 2019-20 시즌 나머지 공연이 취소되자 슬픔에 빠졌다. 20년 넘게 LA필 단원으로 활동하는 친구이자 이웃인 조나단·캐시 캐롤리에게 달려가 하루라도 빨리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 음악팬들로 넘쳐나기만 기다린다는 응원을 보냈다.
당시 조나단과 캐시는 유튜브에 연주 동영상을 올리며 현관 콘서트를 계획했지만 주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각자의 집 현관에서 혹은 발코니에 서서 이웃을 향해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이들 부부를 음악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연대하는 현관 콘서트를 열게 했다.
처음으로 현관 콘서트를 열었던 날 이들 부부는 옆집에 사는 로라 플레밍과 바이얼린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마스네 오페라 ‘타이스’ 중 ‘명상’을 연주했다. 로라 플레밍은 두 사람의 연주를 스마트폰으로 녹화해 아들에게 보여주었고 이렇게 시작된 현관 콘서트는 앤디 윌슨 시의원 같은 단골이 생겼다다.
김병수 변호사는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이웃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여기 함께 있고 함께 헤쳐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음악이야말로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좋은 매개체”라고 말했다.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