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의 영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는 현직 대학 교수이다. 그녀는 선거 이전부터 이미 영부인이 되더라도 대학교수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질 바이든은 조 바이든의 첫째 부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몇 년 뒤인 1977년 바이든과 재혼했다.
이들의 결합은 가히 정치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화제 거리가 많다. 이번 TV대선토론 결과 미 언론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후보사퇴 논란에 휩싸인 현직 대통령에게 차기 대권 레이스를 포기하거나 완주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 질 바이든 여사라고 보도했다.
워싱턴 정계에서는 이미 바이든의 사퇴 여부가 질 바이든 여사의 소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질 여사는 몇년전 케냐 국빈방문 당시 한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대통령의 대변인행세를 하였었다.
미 정치판에 질 여사의 입김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2020년 대선 준비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카멜라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로 내정한 것에 대한 질 여사의 비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있더라도 질 여사의 역할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보조일 뿐이다. 본인이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 여사는 백악관에서의 첫해 소감으로 영부인이라는 자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질 여사는 이번 TV토론 내내 말을 더듬는 남편에게 이 정도면 아주 잘한 거에요 라고 하면서 북돋아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 바이든의 반세기 정치 인생동안 주요 결정을 함께 내려온 영부인 질 여사가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사에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고 하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질 여사가 팔레스타인 가자 학살 사태를 두고 동맹이냐 평화냐라는 딜레마에 처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쟁을 그만 하라고 종용했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질 여사는 현재 백악관에서 나올 의사가 없어 보인다. 그는 남편과 같이 전국을 돌면서 바이든을 위한 미국여성들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특히 2020년 선거에서 경쟁이 치열했던 지역을 사수하려고 질 여사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을 보면 조 바이든 보다 권력을 향한 욕구가 더 큰 것은 아닌지…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재입성 도전을 결심한 데는 영부인의 역할이 절대적이 아니었을까.
며칠 전에는 질 여사가 보란 듯이 ‘vote’라는 단어로 뒤덮인 원피스를 입고 선거유세에 나섰다. CNN이 주관한 첫 대선토론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후보 교체론’ 여론이 불거지자 질 여사가 직접 나선 것이다.
질 여사는 내 남편은 젊은 사람만큼 힘은 없어도 진실을 말하는 정직한 대통령이고, 도널드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라고 조롱했다. 투표하라는 단어로 뒤덮인 치마를 입고 나타난 영부인은 후보사퇴는 없다는 뜻을 말 그대로 온몸으로 외친 것이다.
약 100년전에도 미국의 영부인이 힘없는 현직 대통령을 대신해 활개 친 적이 있다. 첫 부인을 잃은 제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두 번째 재혼한 에디스 윌슨 이야기다. 에디스는 영부인으로서 남편이 대통령 임기중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그를 대신해 영향력을 행사해서 물의를 빚은 것이다.
에디스 여사가 사실을 알리지 않고 상당기간 직접 국정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에디스 여사의 섭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병간호를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것을 통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18개월간이었다.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여자는 남자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제 아무리 강력한 남성 권력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뒤에는 그를 움직이는 더욱 강력한 여자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비극적인 결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는 말한다. 고종 뒤의 민비, 황제 뒤의 클레오파트라… 과연 쇠약한 조 바이든 뒤의 질 바이든 여사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여주영 뉴욕지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