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갈- 잎새들이 시를 쓰며 하늘 날은다
청자 하늘이나 실컷 보고
가을이 쓰고 간 시나 읽어야지
밤새워 얻은 깨달음
아침 햇살이 태워
한줌의 재가 되어도 나는 오늘
한줄의 시를 써야 하리라
시인은 영혼을 불태우는 예술가
불같은 용광로에 언어를 태운다
삶이 남기고 간 쓰디쓴 아픔 그 흔적
시인의 가슴속엔 영롱한 진주로 탄생한다
내속에 살고 있는 또하나의 나
못생긴 작은 돌멩이 하나
목숨처럼 사랑하더니
나를 닮은 그아이는
삶의 울음, 눈물을 머금고 태어난
나를 닮은 그아이는 나의 분신이 되어
무지개빛 고운 사랑 진주였음을…
인생이란 시와 노래와 잠언이라는데
삶 또한 시요, 시는 내속에 숨기어진 노래요
시대를 초월한 값진 예술이다
시인은 영혼을 가꾸는 시대의 예언자
갈-잎새들이 쓰고 간 시나 읽어야지 ---
(작품, 시인은 영혼을 가꾸는 예술가에서)
글이 쓰여지지 않는 날은 백 년된 고목 솔에 등 기댄다. 침묵의 성자처럼 날 키워온 고승처럼 ‘무심’하다. 시대를 초월한 예언자처럼 내 속뜻을 들여다보며 “무얼 찾니”옛 선비처럼 날 키우는 스승이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이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여행, 서정춘)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가슴에 울림을 주는 시다. 우린 얼마를 걸어야 하나---
시를 쓴다는 일은 나에겐 꿀벌의 무지인지도 모른다. 꿀벌은 원래 몸통이 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다 한다. 자신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당연히 날 수 있다는 생각하여 날갯짓을 하다가 날게 되었다 한다.
나 또한 그냥 날개짓을 하는지도 모를 재능이 아닌 본능으로 더러는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내보내고 마음은 부끄럼뿐이다. 애초에 난 잘된 글을 쓴다기보다는 내 마음에 그리움을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꿀벌의 무지였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누군가의 영혼을 훔쳐보는 사랑이었다.
‘코로나’로 갇혀있는 한해 집안에 들꽃을 바꾸면서 자연속에 신비, 들꽃들이 들려주는 침묵 속 축제에 잠겼다.
한집에서 40년을 살면서도 우리집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이 그리 많이 숨어 피는 줄을 몰랐다. 분꽃 마을, 내 어머니의 젖내음을 맡으며 이름 모를 들꽃들이 전해 준 경이, 신비, 밤하늘에 별들이 그토록 맑은 줄도 몰랐다.
온갖 갈 벌레들의 밤의 오케스트라, 노래하지 않는 새가 없고, 지렁이도 꿈틀하며 밤이슬에 젖는다.
‘반야여 대화취’ ‘진리는 불과 같아서 모든 사념의 지푸라기를 태운다’ 선가의 가르침에서 지난 그해 내겐 내생애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몇년을 투병하시던 남편도 세상을 떠나시고 덩그러니 큰 집에 나홀로 내동이쳐진 아프고 힘든 한 해였다.
난 남은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들은 모두 정돈하고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라는 ‘수많은 충고들’ 한해를 들꽃을 가꾸면서 이름없는 들꽃들의 불가사의한 그 불꽃같은 축제를 보면서 새벽처럼 내 속에 숨어 있는 불꽃을 보았다.
내 영혼/ 벽처럼 깨어나리라/ 하나의 들꽃이 저 장엄한 생명이라면/내 영혼 새벽을 깨우리라/하얀 새벽처럼/ 새하늘을 우러러/
남은 생 불꽃을 태우리라. 들꽃들 사이에 천연석 바위를 심고 바위 옆에 난도 심고 구름도 쉬어 가게 하리라.
삶이 하나의 춤이라면 새벽처럼 깨어 어찌 춤을 멈추랴, 내 인생 단 한번만 사는데 아프고 힘든 날 꿀벌의 무지처럼 그냥 무심코 날개짓 멈추지 않으리라.
사람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며 그 맑은 영혼들 속에서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
울지마라/ 내가 너를 깨닫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네가 곧 강물이 되어라/또 다른 영혼이 곤히 잠들 때/ 네가 그를 지켜주는 등대가 되어주고/그가 목말라 할 때/네가 싱싱한 강물이 되어주고/그가 답답하여 괴로울 때/네가 시원한 바람이 되어주라/그리고 그의 웃음 소리가 강물 끝에서 들려오면/ 출렁이는 그 물살에 너의 기쁨을 비쳐주는 가을 하늘이 되어라 (고서에 나온 옛 스승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