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마태복음 15:4)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삶을 지적하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외적으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법적인 요구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생활비를 드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불순종이고 불공경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인들의 전통 중에는 부모에게 바칠 부분을 하나님께 바치면 부모에게는 드리지 않아도 용납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의 이 “고르반”이라는 말을 이용해서 법적으로만 걸리지 않도록 교묘하게 빠져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의 동기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부모들의 경제적 필요에 대해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디모데 전서8:8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끊임없이 해온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고 또 하나는 저의 부모를 섬기고 경제적인 도움을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가난해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삶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뜻으로 부모를 섬기고자 하는 자들의 필요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저는 경험을 통해서 이 말씀이 사실인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께 하듯 부모님을 대해 드리십시오. 골로새서3:18 이하를 보면 아내들과 남편들을 향한 명령, 자녀와 부모들, 또 종들을 향한 명령들이 이뤄진 후 이런 메시지로 끝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부모를 향해서도 주께 하듯 해보십시오. 어쩌면 부모 공경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기 위한 첫 번째 테스트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유형의 권위로서 부모라는 권위를 주셨다면 그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공경을 배우는 학습의 첫 번째 자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부모에게 어떤 모범을 보이셨습니까?
첫 번째, 부모에게 순종하여 섬기셨습니다. 누가복음 2:51에 보면 소년 예수께서 청년 예수로 성숙해 가는 주님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모의 권위 앞에 스스로 복종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친히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 보듯,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삶의 잘못을 지적하시며 하셨던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그 고통 속에서 남기신 말씀 중 하나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였습니다. 우리 동양적인 언어 감각으로 읽을 때는 어떻게 어머니에게서 ”여자여”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히랍어의 “구나이”는 본래 아랍어 “구낭”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인데 이 단어는 결코 가벼운 의미의 경칭이 아니라 높고 귀한 지체의 사람을 향해 사용되던 존칭입니다. 고대 문서들을 읽어보면 왕후에게 사용되던 존칭이 바로 이 단어 였습니다. 유명한 로마의 황제 안토니우스가 유명한 애굽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만났을 때 한 첫마디가 “여인(구나이)이시여” 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하신 것은 우리 부모를 향한 존칭어 사용의 중요성을 가르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