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과 로라 진닉 부부는 지난 36년간 네바다주를 떠난 적이 없다. 아들과 손자들이 오클라호마 시티로 이사한 뒤 부부도 아들이 사는 동네로 이사하기로 얼마 전 결정했다. 새집 구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부는 우선 부동산 중개업체를 통해 침실 4개짜리(대지 3분의 1에이커) 집부터 내놨다. 부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내놓은 집이 48만달러에 팔렸는데 부부에게는 횡재나 다름없는 금액이다. 집을 판 돈으로 아들 집 근처에 27만5,000달러짜리 단층 주택을 바로 마련했다.
주택 재구매자 중간나이, 환갑 앞둔 58세
장기보유 집 팔아 현금 동원력·크레딧 막강
손자뻘 첫 주택구입자 바이어 경쟁서 밀려
집 판 돈으로 작은 집 사고 부채도 상환
다운사이즈에 성공한 덕분에 부부는 생애 처음으로 전액 현금으로 주택을 구입해 비싼 모기지 이자를 낼 필요도 없었다. 부인 로라 진닉(77)은 “이번 결정을 내리기 잘 한 것 같다”라며 “늘그막에 빚 없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노년층 주택 시장 쥐락펴락
현재 주택 시장은 진닉 부부와 같은 노년층 바이어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핫’한 주택 시장에서 노년층이 강력한 구매력을 앞세워 매물을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중이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주택 재구매자(주택 1차례 이상 구매)의 중간 나이는 58세다. 작년 최고 나이인 59세보다 1살 낮아졌지만 환갑 나이를 코 앞에 둔 나이로 노년층이 활발한 주택 구매 활동을 펼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올해 주택 재구매자 중간 나이는 NAR이 집계를 시작한 1981년(36)과 비교하면 무려 22세나 높아진 나이다. 이들 조부모 세대 주택 구매자들이 최근 젊은 손자뻘인 첫주택구입자들을 주택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첫주택구입자 비율은 32%로 1981년 이후 평균치인 38%에 비해 크게 낮다. 1980년대 초반 20대 후반이던 첫주택구입자의 평균 나이도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장기 보유 집 팔아 현금 풍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러 경제 분야 중 특히 주택 시장이 강세를 보인 바 있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기준 금리를 22년 만에 최고치로 인상했고 이로 인한 모기지 이자율 상승이 주택 수요를 감소시킬 것으로 기대됐다. 연준의 예상대로 30년 고정 모기지 이자율은 8%대에 육박했지만 주택 시장 둔화는 일시적 현상에 그쳤다.
주택 시장 회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장기간 보유한 주택을 처분해 풍부한 현금 자산을 지닌 노년층이 주요 주택 수요층으로 등장했다. 제시카 라우츠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구입 경쟁이 줄었지만 첫주택구입자들은 주택 시장 진입에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복수 오퍼 경쟁이 발생하면 전액 현금 또는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높은 바이어가 승리하는데 그들이 바로 노년층”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층 바이어 선호
노년층이 활발한 주택 구입에 나설 수 있는 이유는 집을 처분해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NAR에 따르면 올해 셀러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와 동일한 60세로 매우 높았다. 매물 부족에 따른 복수 오퍼 경쟁 상황에서 셀러는 대개 가장 유리한 조건의 오퍼를 제시한 바이어에게 집을 판다. 다운페이먼트 비율이 높거나 크레딧 점수가 높은 바이어 또는 전액 현금 구매 조건을 제시한 바이어가 주택을 구입할 확률이 높은데 노년층 바이어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휴스턴 지역 부동산 에이전트 제니퍼 도즈도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부동산 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휴스턴 지역의 집값(중위 가격)은 지난 3년간 27만5,000달러에서 32만5,000달러로 올랐다. 시니어 고객 전문 도즈 에이전트의 주 고객층은 시니어 주택 시설을 선호하지 않는 고객 중 단층집으로 다운사이즈 하려는 바이어다. NAR에 따르면 전체 바이어 중 70%가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거주하지 않는 바이어로 1985년(42%) 이후 최고치다. 이들 대부분은 베이비붐 세대로 자녀가 출가한 뒤 장기 보유한 집을 팔고 다운사이즈 용 주택을 찾는 바이어로 볼 수 있다.
팬데믹 기간 만연했던 과열 구입 경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높은 자산을 축적한 노년층 바이어가 현재 주택 시장 상황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도즈 에이전트는 “노년층 바이어는 셀러에게 주택 거래를 문제없이 완료할 수 있을 것이란 안정감을 준다”라며 노년층 바이어가 지닌 이점을 설명했다.
■집 팔아 새 집 사고 크레딧 부채도 상환
올해 얼린 존슨과 그녀의 남편 돈은 35년간 살아온 집을 돌아본 뒤 관리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76세인 부부는 남편 돈이 암 판정을 받은 뒤 집을 최대한 빨리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부부는 미주리주 와일드우드에 취한 침실 4개짜리 2층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 가기를 원했다.
부부는 친구가 사는 곳 인근에 17만달러에 나온 침실 2개짜리 콘도를 구입했다. 살고 있던 집을 팔기 전에 콘도를 먼저 구입하는 바람에 부부는 모기지 대출 2건을 받아야 했다. 첫 번째 대출에 적용된 이자율은 4%로 부담이 없지만 2차 대출 이자율은 7%로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곧 전에 살던 집을 52만달러에 팔았고 매매 수익금으로 새 콘도 구입 시 발급받은 모기지 대출을 상환할 계획이다. 부인 얼린은 “모기지가 2개지만 집을 판 돈으로 대출을 감당할 수 있고 남은 돈으로는 크레딧 카드 빚을 갚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 안 파는 노년층도 다수
존슨 부부처럼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늘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한 매물이 더욱 심각한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미시건주 앤 아버의 티나 도일 부동산 에이전트에 따르면 지역 매물 대기 기간은 1달 반에 불과하다. 현재 나온 매물이 한 달 반이면 다 소진될 정도 매물이 적다는 것인데 작년 매물 수준보다 18%나 더 감소한 수치다. 대부분 경우 낮은 이자율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집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 이들이 집을 팔려면 분명한 동기가 필요하다.
도일 에이전트에 따르면 앤 아버 지역의 주택 수요가 감소해 경쟁도 전에 비해 덜 해졌다. 하지만 노년층 바이어와 젊은 층 첫주택구입자가 작은 규모의 비슷한 형태의 주택 매물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대부분 경쟁에서 노년층 바이어가 승리하고 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