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샤핑 시즌으로 접어들었지만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 성장 엔진이 식을 수도 있다는 신호가 나온다. 주요 소매업체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고객들이 고가품 구입을 줄이는 대신 필수품과 할인 품목 구입에 치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매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는 연중 가장 바쁜 샤핑 시즌에 접어들어도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고금리 과소비 자제, 가치 소비 치중
실업률 상승 지출 의지 감소, 업계도 신중한 전망
크레딧 부채 쌓이고 이자율 올라‘시한폭탄’우려
이자율 떨어져야 소비 늘고 크레딧 부채 문제 해결
존 데이빗 레이니 월마트 최고 재정 책임자는 “예년에 비해 다소 불규칙적인 판매 실적으로 인해 90일 전 상황과 비교해 향후 판매 실적 전망에 대한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라고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분석가들에게 설명했다.
지난 10월 소비 위축 현상은 경제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났다. 연방 상무부에 따르면 10월 소비 판매는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달 대비 0.1% 하락했다. 시장 조사 기관 어도비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일부 지출을 늘리는 소비자도 있는데 이들은 대체 구매 방식인 ‘선 구매 후 지불’(buy now, pay later) 방식 소비자들로 작년보다 6%나 증가했다.
■대형 소매 업체 줄줄이 신중 전망
크리스티나 헤닝턴 타겟 최고 성장 책임자는 최근 실적 발표회에서 “예산 부족에 직면한 소비자들은 더욱 신중한 지출 행태를 보이고 있다”라며 “‘이 물건 구입이 내 삶에 가치가 있을까’라며 자문하며 가치 소비에 나서고 있다”라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다른 주요 소매업체도 올 연말 비슷한 소비 트렌드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이드리언 미첼 메이시스 최고재정책임자는 “올 연말 소비자들이 계속 도전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의류업체 갭의 카트리나 오코넬 최정 재정 책임자도 “소비자 지출 트렌드를 신중하게 관찰하고 있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윌리엄스-소노마 최고 경영자는 올 연말 판매 실적에 긍정적인 전망을 유지하면서도 “예년과 달리 지출을 주저하는 소비 트렌드에 직면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업률 상승에 지출 의지 줄어
‘전국소매업협회’(NRF)는 올 연말 소비자 지출이 작년보다 증가하겠지만 증가 폭은 최근 몇 년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했다. NRF에 따르면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올해 11월과 12월 소매 판매 증가 폭은 작년 대비 약 3~4%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기록인 5.4%보다 다소 낮아진 수치다.
잭 클라인헨츠 NR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록적인 강세를 보이는 고용 시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실업률이 상승한 점을 지적하며 “향후 고용이 불안하면 소비자들은 지출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며 “지출 능력은 고용 안정에 있는데 현재 소비자들이 지출할 의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노동 시장 동향 조사 업체 챌린저, 그레이앤크리스마스는 기업들이 올 연말 소비 위축에 대비함에 따라 계절 채용 공고가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대출 증가·이자율 상승’ 시한폭탄 터질 수도
경제학자들은 소비자와 경제가 변곡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40년 만에 물가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가계부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던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마침내 진정되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가라앉히기 위해 연방준비제도(FRB·연준)는 기준 금리를 22년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인상했고 이로 인해 소비자의 차입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팬데믹 관련 지원금과 부채 탕감 프로그램에 의존해 물가 인상을 버텨 가계부를 꾸려갈 수 있었다. 팬데믹 이후 약 2조 달러에 달하는 소비자 저축이 최근 소진되어 감에 따라 최근 몇 개월 사이 크레딧 카드와 기타 대출이 급증하고 있는데 경제학자들은 이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크레딧 카드 부채가 최근 기록적인 수준으로 쌓이고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크레딧 카드 부채가 1,540억 달러나 늘었는데 이는 1년 증가 폭으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빠르게 증가하는 크레딧 카드 부채 규모는 이자율까지 덩달아 뛰면서 현재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온라인재정정보업체 뱅크레잇닷컴에 따르면 크레딧 카드에 적용되는 이자율은 2년 전 평균 16.3%에서 최근 20.7%로 올랐다. 크레딧 카드 부채를 제때 갚지 못하는 대출자가 늘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사항이다. 전체 크레딧 카드 부채 중 약 8%가 30일 이상 연체 상태로 이는 경기 대침체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자율 하락이 관건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저스틴 비글리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가구의 재정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하지만 크레딧 카드 사용이 급증하는 점은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비글리 이코노미스트는 임금 상승 속도가 물가를 앞지르고 이자율 하락으로 대출자들이 재융자를 할 수 있게 되면 내년 중 크레딧 카드 연체율이 내년 중 정점을 찍고 하락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미국인이 바라보는 경제 전망도 밝지는 않다. 미시건 대학에 따르면 소비자 심리지수는 지난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소비자들은 개스와 식료품과 같은 필수품 가격에 더 신경을 쓰고 있으며 고이자율과 우크라이나 사태, 가자 전쟁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와 시에나 대학이 공동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등록 유권자 중 81%는 현재 경제 상태를 ‘보통’ 또는 ‘나쁨’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경제 상황이 ‘좋음’ 또는 ‘우수’라고 답한 유권자는 19%에 불과했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밥 슈워츠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전보다 신중해진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겠지만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설문 조사에서 다소 과장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그렇게 행동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 나타나는 소비 트렌드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