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혈관 벽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약해지면 혈관이 풍선이나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뇌 혈관을‘뇌동맥류(腦動脈瘤ㆍcerebral aneurysm)’라고 한다. 풍선도 부풀다 보면 언젠가 터지듯이 뇌동맥류도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터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뇌동맥류를‘머리 속 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다.
묶음 치료군에서 6개월 후 사망률 낮추고 기능 회복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뇌와 척수 사이의 거미줄처럼 생긴 공간(지주막 아래)에 혈액이 스며든다(지주막하(蜘蛛膜下) 출혈·subarachnoid hemorrhage). 이처럼 지주막하 출혈(거미막하 출혈)이 되면 50%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뇌동맥류 파열로 발생한 지주막하 출혈은 매년 10만 명당 10명의 환자에게 발생한다. 이 중 중증 환자는 전체의 20~30%를 차지한다. 이러한 중증 환자 중에서도 30~40%는 사망에 이르고, 생존한 환자도 절반 이상에서 중증 장애를 남기게 된다. 따라서 중증 지주막하 출혈의 예후(치료 경과)를 향상하는 게 신경외학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이런 가운데 중증 ‘지주막하 출혈’로 인한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묶음 치료법’이 제안됐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중환자 다학제 연구팀(하은진 중환자의학과 교수·최영훈 영상의학과 전임의·신경외과 뇌혈관팀)은 중증 지주막하 출혈 환자 90명을 대상으로 묶음 치료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은 ‘묶음 치료’의 적용이 지주막하 출혈 환자의 예후를 향상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중증 지주막하 출혈 묶음 치료법을 국내 최초로 적용했다.
묶음 치료는 미국 의료질향상연구소(US IHI)에서 제안한 방법으로, 중증 질환 환자의 예후를 향상하기 위해 3~5개의 핵심 치료를 체계적으로 조합해 환자에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중요한 치료법을 일관성 있게 적용해 환자 예후를 최적화할 수 있으며, 중증 패혈증 치료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연구팀은 먼저 체계적인 문헌 고찰과 다학제 논의를 거쳐 중증 지주막하 출혈 묶음 치료를 구성하는 5가지 핵심 치료를 결정했다.
5가지 핵심 치료에는 가장 중요한 ▲조기 뇌압 감시 ▲파열된 뇌동맥류 조기 치료 ▲신경계 감시 ▲신경계 감시를 통한 지연성 허혈 조기 진단·치료 ▲지주막하 출혈과 관련된 내과적 문제의 체계적 관리 등이 포함됐다.
이후 신경외과 중환자 전문의의 주도하에 치료 항목별 목표를 설정하고 적용 방식을 프로토콜화했으며 묶음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다학제 팀 내 교육을 실시했다.
연구팀은 묶음 치료의 효과 검증을 위해 2008~2022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은 중증 지주막하 출혈 환자 90명을 대상으로 묶음 치료가 적용된 2017년 전후 환자군 비교 분석을 진행했다. 90명의 환자 중 43명은 묶음 치료를 받았고, 47명의 환자는 기존 치료를 받았다.
연구 결과, 묶음 치료군은 6개월 후 사망률이 14.3%로, 기존 치료군의 사망률 27.3%에 비해 절반가량 감소했다. 또한 6개월 동안 묶음 치료군의 46.4%가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기능을 회복했는데, 이는 기존 치료군 20.7%에 비해 2배가량 높은 수치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