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에게 흔한 ‘아시안 글로우’ 원인과 영향은
변이 유전자, 알코올이 신체에 미치는 위험 증가
두경부암·위암·관상동맥 질환·뇌졸중·골다공증 등
단순한 불편 아니라 심각한 건강상 경고일수도
대만에서 자란 조셉 우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가끔씩 술을 즐길 때 한두 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몇 년 후 직접 술을 마셔본 그는 같은 현상을 직접 경험했다. 알코올 홍조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를 연구하는 스탠포드 심혈관 연구소 소장이자 미국심장협회 회장인 우는“심박수가 분당 130회까지 올라가고, 얼굴이 붉어지며, 3~4시간 후에는 머리가 아프다.”라고 그 증세를 설명했다. 전 세계 인구의 8%인 약 5억6,000만 명이 이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이 동아시아 계이므로 이 반응은‘아시안 글로우’(Asian glow) 또는 ‘아시안 플러시’(Asian flush)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동아시아인의 약 45%는 술을 마실 때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을 경험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쾌감 때문에 아예 술을 마시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불편함을 견디며 마시고, 때로는 항히스타민제의 도움으로 그러한 현상을 줄이려 노력한다.
그러나 조셉 우와 같은 전문가들은 알코올 홍조 반응을 경험하는 사람은 가능한 한 적게 마시거나 전혀 마시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홍조와 기타 증상은 술이 이런 사람들에게 훨씬 더 독성이 강하다는 신체의 심각한 경고일 수 있기 때문이다.
ALDH2*2 변이체로 알려진 돌연변이는 중간 내지 다량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질병에 걸릴 높은 위험
우는 어렸을 때 알코올 홍조 반응은 단지 “귀찮고 불편한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의학적 영향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웨일 코넬 의과대학의 유전의학 의장인 로널드 G. 크리스탈은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흔한 유전질환 중 하나이고, 사람들은 술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식도암 등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ALDH2*2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적당히(남성 하루 2잔, 여성 하루 1잔) 술을 마시면 변이가 없는 사람이 같은 양을 마시는 것보다 식도암에 걸릴 위험이 40~80배 높다. 이는 용량 의존적 관계로, 하루에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실수록 위험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ALDH2*2 변이는 비음주자에게는 식도암 위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돌연변이는 또한 동아시아인에게서 두경부암, 위암, 관상동맥 질환, 뇌졸중 및 골다공증 위험의 증가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코올 홍조 반응의 원인은
ALDH2*2 변이형을 가진 사람은 신체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능성 효소가 부족하다. 알코올은 보통 체내에서 두 단계로 대사된다. 한 효소는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전환시키는데 이 물질은 알코올 자체보다 인체에 훨씬 더 독성이 강한 화합물이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효소가 아세트알데히드를 체내에서 안전하게 대사되는 화합물인 아세테이트로 빠르게 전환시킨다.
알코올 홍조 반응이 있는 사람은 두 번째 효소인 미토콘드리아 알데히드 탈수소효소 2(ALDH2)의 활성이 매우 낮다. 이 ALDH2가 결핍되면 알코올이 정상적으로 대사되지 않고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혈액에 축적된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세계보건기구에서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는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라고 말한 스탠포드 아시아 보건연구 및 교육센터의 책임자인 체홍 첸(Che-Hong Chen)은 “맥주 두 캔만 마셔도 혈중 아세트알데히드의 양이 이미 발암 수준에 도달한다.”고 설명했다.
첸은 실험실에서 간단한 에탄올 패치 테스트를 통해 피험자의 ALDH2 결핍 여부를 확인한다. 반창고에 에탄올을 바르고 피부에 20분 동안 붙이고 있으면 아세트알데히드가 혈관을 확장시켜 홍조를 일으키고,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은 해당 부위에 붉은 반점이 생긴다. 에탄올 패치 테스트의 정확도는 70~90%이다. 확실하게 알고 싶으면 23andMe 또는 Ancestry에서 DNA 검사를 받으면 된다.
▲항히스타민제가 도움이 되나
항히스타민제는 혈관 확장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피부 홍조를 예방할 수 있지만,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수치를 낮추는 데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첸은 자기 학교의 대학생들이 얼굴이 빨개지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술 마시기 전에 펩시드 AC나 잔탁을 복용한다면서 “알코올 홍조 반응을 예방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면 기본적으로 불쾌한 느낌을 마비시켜서 더 많이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인식의 부족
ALDH2*2 변이는 2,000~3,000년 전 중국 동남부에 살았던 한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돌연변이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퍼졌으며 오늘날 보균자의 비율은 한국(30%), 중국(35%), 일본(40%), 대만(49%) 등 국가별로 다양하다.
알코올 홍조 반응이 이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섭취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음주자 비율은 1990년 48.4%에서 2017년 66.9%로 증가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폭음 문제가 심각하고, 중국도 지난 30년 동안 알코올 소비가 급증했다.
동아시아는 알코올로 인한 암 발병률이 5.7%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이에 비해 북미는 3%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ALDH2 결핍으로 인한 음주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유전학자인데도 이 돌연변이에 대해 몰랐다.”는 첸은 “고국인 대만을 방문했을 때 나처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알코올 홍조 반응은 단순히 불편하다거나 간이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적당한 술은 건강에 좋다고 믿고 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첸은 알코올 홍조 반응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대만의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2017년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대만 알코올 과민증 교육협회는 정부와 협력하여 ALDH2 결핍과 알코올 섭취에 관한 교육을 장려하면서 2019년 5월9일 제1회 대만 전국 금주의 날을 시작했다. 중국어에서 “5-9”는 “금주”의 동음이의어이다.
<By Meeri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