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 ‘산 넘어 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패배 결과를 뒤집기 위해 각종 불법 시도를 한 혐의로 지난 1일 연방 대배심과 특검에 의해 기소된 가운데(본보 2일자 A1면 보도) 특히 이번 기소는 미국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든 2021년 1ㆍ6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와 맞물려 파장이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성추문 입막음과 기밀문건 무단 반출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3번째 기소됨으로써 2024년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공화당 경선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로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면해 있는 형사기소 내용들과 전망을 정리한다.
■의사당 난입사건 선동 의혹
잭 스미스 연방특별검사와 연방 대배심이 ‘기소’를 결정하게 된 핵심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권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미국 정부의 근간인 대선을 표적 삼아 불안정하고 설득력 있는 거짓말을 창조해 냈다”는 공소장 문구에 잘 드러나 있다.
이번 사건은 ‘선거 제도’라는 민주주의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1차 기소(성관계 입막음 돈 지급 관련 기업 회계문서 조작)나 2차 기소(기밀문건 무단 반출)와는 그 무게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스미스 특검이 작성한 45쪽 분량의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선 패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 이를 뒤집기 위해 불법 행위를 일삼았다. 우선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현 대통령)에게 패한 애리조나주 등에서 그는 “투표인 명단에 사망자가 포함되는 등 선거 조작이 있었다”고 근거 없이 주장했다. 7개 경합 주에서 거짓 선거인 명부를 조작했고, 특정 주의 공무원들에게 투표 결과를 부정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법무부의 권한을 사용, ‘가짜 선거 범죄 수사’를 수행하면서 선거에 대한 거짓말을 부추기려고도 했다. 2021년 1월6일 선거 결과를 최종 확인·공표하려 했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선거 결과를 번복하라”고 수차례 종용했던 건 범행의 정점이었다. 특검은 이 같은 행위들에 대해 미국 정부 기망을 위한 모의, 공무집행 방해 등 4건의 혐의(연방법 위반)를 적용했다.
■성추문 입막음 돈 사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으로 이미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직전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과거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변호인을 통해 입막음 돈을 지급한 뒤 그 비용에 관한 회사 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3월 말 기소됐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범죄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밀문서 대량 유출 의혹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재임 중 취득한 국가기밀 문건을 퇴임 후 자택으로 불법 반출해 보관해온 혐의로 지난 6월 공식 기소됐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모두 37건의 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국방 관련 기밀 정보를 의도적으로 보유한 혐의가 31건이며 나머지 6건은 수사 대상 문건 은닉과 허위 진술 등 사법 방해 관련이다. 검찰은 기소장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수백건의 기밀 문건을 담은 상자를 백악관에 보관했으며 2021년 1월 20일 임기를 마친 뒤 허가 없이 이런 상자 여러 개를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자택으로 가져갔으며 연방 당국이 수사에 착수하자 이를 덮으려 수사를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조지아주 개표 개입 의혹
월스트릿저널(WSJ) 등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이후 조지아주 선거 결과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 사건이 기소가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는 사건으로 꼽힌다. 트럼프는 당시 경합 지역이었던 조지아주 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패배하자 2021년 1월 초 브래드 래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1만1,780표를 찾아내라’고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망
이같은 일련의 형사기소는 내년 대선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화당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54%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어 이번 기소에도 불구하고 지지층 결집이 확고해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맞붙을 본선에선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많아지고 있다.
NYT 여론조사에서 바이든·트럼프 두 사람의 지지율은 43%로 동률이었다. 하지만 선거운동과 재판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잘못이 추가 확인될 경우 무당파와 중도층이 그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