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아야 할 인플레이션 시대의 용어
인플레이션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은 커졌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상품과 서비스 물가 상승은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이나 다른 국가 중앙은행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끈질기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설명이 등장하고 있다.
▲익스큐즈플레이션(Excuseflation·핑계인플레이션)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상품과 서비스 가릴 것 없이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인력 부족과 공급 대란을 야기하면서 가격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컨테이너에 상품을 운송하는 비용은 10배까지 치솟았던 것이 한 가지 예다. 기업의 경영진은 이익률을 유지하려면 늘어난 비용을 판매 가격에 전가해야만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논리는 일종의 변명이라고 본다. 지난해 말 블룸버그의 팟캐스트인 오드 랏츠(Odd Lots)에 출연한 한 시카고의 제빵사는 2022년에 뉴스에서 보는 각종 글로벌 이벤트들을 두고 고객들의 불평 없이 가격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꼬집었다.
UBS의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인 폴 도노반은 3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선진국 경제가 “이윤 주도형(profit-led inflation) 인플레이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면서 “이는 일부 기업이 실제로는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정한 조치로 위장해 고객을 설득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익스큐즈플레이션과 유사하지만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로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탐욕 인플레이션)이 있다.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탐욕 인플레이션)
그리드플레이션은 가격 상승을 일종의 부당이득이나 바가지로 전제하는 논쟁적 용어다. 기업들이 이기적인 의도로 상품과 서비스 비용을 올린다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 제약이 상당 부분 해소된 후에도 일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 데 대한 의구심을 담은 설명이다.
물론 이 용어에 대한 반박도 만만찮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인 존 오서스는 “자본주의는 탐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문제는 (탐욕 자체가 아니라) 탐욕이 착취로 넘어가는 지점에 있다”며 “이를 명백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그 선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지도 최근 기고문에서 기업이 공급 부족에 대응해 가격을 인상하는 조치는 기업을 방어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행위라고 평가하며 그리드플레이션을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조정 기능을 부정하려 한다면 이를 대체하는 것은 배급제와 같은 더 안좋은 제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드플레이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셀러스 인플레이션(Sellers‘ Inflation·판매자 인플레이션)에 더 주목할 것이다.
▲셀러스 인플레이션(Sellers’ Inflation·판매자 인플레이션)
판매자 인플레이션은 이사벨라 베버 메사추세츠대학 교수가 이번 인플레이션 기간을 과거 사례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베버 교수는 2021년 12월 “시장 지배력을 가진 대기업들이 가격을 올려 횡재할 수 있는 기회로 공급 문제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베버 교수는 이같은 인식 하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거의 사용된 적이 없는 경제 도구, 즉 가격 통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이는 인플레이션이 변장한 모습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슈퍼마켓에서 구매하는 커피 한 봉지나 시리얼 한 상자가 더 작은 포장으로 제공되면 가격이 이전보다 더 오르지 않더라도 결국 가격을 올린 효과가 나타나닌다. 바클레이즈의 조사에 따르면 식품 인플레이션 특히 고착화되고 있는 영국에서는 소비자의 3분의 2가 일부 제품의 포장이 줄어들었다고 응답했다. 83%는 이같은 추세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용량이나 크기를 줄이는 방식 뿐 아니라 이를 테면 영업시간을 줄이는 등 고객 서비스 품질을 줄이는 식이 될 수도 있다. 일종의 비용절감의 형태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결국 내릴 것이다. 바로 다음과 같은 형태를 통해서다.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인플레이션 둔화)
디스인플레이션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뗀 자동차처럼 인플레이션 속도가 둔화되는 현상이다. 비록 높은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상승률이 둔화되면 디스인플레이션이다. 연준이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5월에 전월 대비 0.1% 상승해 2년여 만에 가장 느린 속도를 보이면서 미국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라는 평가도 있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노동 생산이 활발해지고 혁신이 일어나는 등 경제가 호황일 때 발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경기 둔화를 반영한다. 다만 디플레이션(물가하락·deflation)과 혼동해선 안된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추세가 느려지고 있다는 의미로 여전히 물가 상승 자체는 이어진다는 의미이며,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내려간다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 ‘완벽한 디스인플레이션(immaculate disinflaion)’
최근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 중 하나인 이 말은 연준이나 중앙은행이 실업률을 높이지 않고도 물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통상 실업자가 늘지 않고 물가만 낮아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주요 수단인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디스인플레이션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러 선진국의 노동 시장이 여전히 타이트하기 때문에 현재의 경기 사이클이 일반적인 패턴과는 다를 것이라고 본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