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공 부족에 빠진 바이드노믹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은퇴한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의 빈자리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으로 전 세계 기업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있지만 일한 인력도, 인력의 숙련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당시 이어진 ‘대퇴사(great resignation)’의 후폭풍은 인플레이션을 넘어 바이드노믹스와 미국의 장기 성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미국의 초과은퇴자 수는 240만 명에 이른다. 초과은퇴는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했을 인력들의 퇴사를 일컫는다. 보고서는 미국의 초과은퇴가 지난해 말 295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팬데믹이 종료된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인력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세인트루이스연은의 선임이코노미스트인 미겔 패리아 카스트로는 “초과은퇴는 여전히 자연스러운 은퇴 추세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며 “이는 고용 시장의 인력 수급 불균형과 낮은 실업률의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업의 인력 부족으로 이어진다. 미국 고용부에 따르면 4월 기준 미국의 실업자 수는 566만 명인 반면 구인 중인 일자리는 1010만 개로 구직자 1인당 일자리가 1.8개 수준이다. 전원 채용하더라도 필요 인력의 절반 정도만 채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상공회의소 최고정책책임자인 닐 브래들리는 “여러 당면 과제 가운데 노동자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는 말을 기업들로부터 매일 듣고 있다”고 전했다.
숙련공들의 은퇴로 산업 현장의 기술과 노하우도 대거 사라졌다. 무디스는 팬데믹 이후 고용 시장을 떠난 인력의 70%가 55세 이상인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산업·자산 시장 황금기를 이끌면서 업무 노하우를 익힌 세대다. 그 여파로 미국의 1분기 노동생산성은 전년 동기 대비 0.8% 감소하며 5분기 연속 줄어들었다. 1948년 노동생산성 통계 집계 이후 최장 기간의 생산성 감소다. 재미 경제학자인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하락한 생산량을 채우기 위한) 인력마저 부족해지면서 고용 시장이 악순환에 빠졌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서비스업과 제조업을 망라해 미국의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자리는 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IIJA)’에 이어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을 잇따라 시행하면서 재정을 투입해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맥킨지는 “이미 미국 건설업에 44만 개, 제조업에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있다”며 “미국의 구인 수요가 역대 최대인 상황에서 업종별 수십만 개에 달하는 추가 일자리를 누가 채울지가 다음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미제조업협회는 2030년까지 제조 업체의 인력 수요가 400만 명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210만 명은 채용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2030년 한 해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협회는 추산했다.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에도 불똥이 튀었다. 미국 내 한 무역 전문가는 “바이드노믹스에 대응해 미국 투자를 늘리는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1차 문제는 인력 수급과 생산성”이라며 “인력 공급 업체에 생산직 채용을 맡기고 있지만 용역 업체들은 사람이 모자라 미성년자 등 부적격자까지 현장에 밀어넣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이민 확대가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모이는 대안이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생산자동화 역시 시간이 걸리는 해결책”이라며 “제조업의 인력난 문제는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