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방치할 수 없지만 너무 올리면 침체 우려
미국 등 주요국들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여전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 금리 인상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의 정책 시차 등을 둘러싸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
일간 월스트릿저널(WSJ)은 19일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이 미국과 유럽에서 여전히 5%를 웃돌고 있다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이 수치는 5월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서 각각 5.3%와 5.4%,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7개국(G7)에서 각각 7.1%와 5.2%를 기록했다.
게다가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실업률이 다시 하락하는 등 지난해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가 사그라드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유로존은 1분기 이미 기술적으로 경기 침체에 들어갔지만 1분기 신규 일자리가 100만개 가까이 늘었고 미국도 5월 비농업 일자리가 33만9,000개 증가했다.
캐나다·스웨덴·일본·영국 등은 예상치를 상회하는 성장에 침체를 피했고 경기 전망도 비교적 양호한 상황이다.
WSJ은 이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이 목표치( 2% 수준)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할지, 인플레이션 하락이 지연되고 있을 뿐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평가했다.
물가가 진정되지 않는데도 상황을 지켜볼 경우 높은 인플레이션이 수년간 이어질 수 있고, 너무 과도하게 금리를 올릴 경우 주요국 경제가 깊은 침체로 빠져들 수 있는 만큼 잘못된 판단에 따른 대가가 크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중앙은행 부총재를 지낸 스테펀 게를라흐는 “중앙은행들이 부러워 할만한 상황에 부닥친 것은 아니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주요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가운데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연준)는 14일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연내 2차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준이 주시하는 근원 서비스 인플레이션(주거비 제외)은 여전히 높고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8회 연속 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4.00%로 0.25%포인트 올리면서 다음 달에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고, 기준금리 인상을 잠시 멈췄던 캐나다와 호주는 이달 들어 금리 인상을 재개했다.
WSJ은 각국 중앙은행이 지난해 인플레이션 상승을 일시적이라 판단하며 대응 시기를 놓친 오류를 범했다면서,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그동안의 금리 인상 효과가 경제에 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국면이라고 봤다.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코로나19 확산 기간 늘어난 가계·기업의 저축액 덕분에 그동안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지탱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저축액이 떨어지면 소비가 줄고 인플레이션이 다시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또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가계·기업의 반응도 선형적이지 않은 만큼 0%에서 1%로 오를 때는 반응이 없지만 5%로 오를 경우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있고, 경제가 여전히 코로나19 확산 여파에서 회복 국면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현재 주요한 점은 과거 통화정책 결정의 전달”이라면서 “금융환경에 강하게 반영되고 있지만 완전히 체감하기까지는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연준 인사들은 과거보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여파가 더 빨리 반영되고 있으며, 과거의 금리 인상 효과는 이미 반영된 만큼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연준이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함에 따라 시장 반영도 빨라지고 있다면서, 지난해 3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전해 2년물 미 국채 금리가 2%포인트 올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WSJ은 현재로서는 투자자들이 중앙은행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목소리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과 유럽 증시 모두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투자자들이 연내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