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국 자유무역협정 협상,
자유무역·관세 관심 줄고
노동조건·환경·지재권 관심
2010년대까지만 해도 통상 관련 이슈의 최대 초점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이들 협정에 따라 다양한 품목별 관세 규모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관심이 집중됐지만, 지금은 FTA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월스트릿저널(WSJ)은 7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년간 일본·유럽연합(EU)·인도 등 20여개국과 경제적 연결 방안을 논의했지만, ‘자유무역’ ‘관세’는 논외였다”고 지적했다.
이제 세계 각국이 무역 협상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FTA가 포괄하는 관세 문제가 아니라 환경 규제, 디지털 저작권, 기술·제품 표준 같은 비관세 장벽이다. WSJ는 이를 보도하며 “서비스업, 전자상거래가 성장하며 상품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시행하면서 한국·일본·EU 등 동맹국 기업이 미국에 직접 진출해 보조금을 받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논의할 때도 관세 이야기는 없다.
무역 협상에서 관세의 비중이 줄어든 결정적 이유는 각국마다 임금, 생산비 격차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애초에 관세가 너무 낮아서 협상할 필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에 수입되는 EU 상품에 매겨지는 관세는 2.5%로 세계 표준보다 상당히 낮은 상태다. 따라서 겉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각종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게 무역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은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시그네 랏소 EU집행위원회 연구·혁신 분야 사무국장은 “관세를 철폐하는데 성공한다 해도 비관세 장벽이 남아 있으면 시장에 접근도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FTA가 의회에서 비준동의안 통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각종 비관세 장벽을 다루는 협정은 정부 실무자 간 서명으로 끝나는 경우도 적잖다. 정치적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로, WSJ는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 혼란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비관세 장벽과 비교하면 정치인들에게 자유무역협정이 구식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