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 60년 세계 입맛 홀리다
지구촌 2.5명당 1명 후루룩
비법은 ‘K라면의 현지화’
32억 개. 지난해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소비된‘K라면’의 양이다. 이를 80억 세계 인구 수로 나누면, 해외에서 2.5명당 1명 꼴로 K라면을 먹은 셈이다.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스위스 최고 관광 명소인 융프라우에도, 하루에 전기가 3시간만 들어오는 인도 북부 라다크의 시골 마을에도‘한국인의 매운맛’이 절로 생각나는 라면 냄새가 깊게 배어있다. 단순 K콘텐츠 열풍의 반사이익만이 아니다. K라면의 인기 뒤에는 1963년 국내 최초의 라면인‘삼양라면’ 출시 후 60년간 한국의 맛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세우고 연구개발을 강화한 식품 기업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 등 국내 업체들이 지난해 해외로 수출하거나 현지에서 생산해 라면을 판매한 금액은 2조 3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이를 ‘신라면’ 한 봉지의 출고가(726원)로 환산하면 판매량은 32억 개에 달한다. 10년 전인 2012년 한국인의 연간 라면 소비량이 32억 개였던 것을 고려하면, 글로벌 시장이 내수 시장만큼 성장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업계는 올해 해외 매출이 국내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라면 매출은 약 2조 7000억 원으로 해외와 차이가 4000억 원에 불과하다.
라면 수출의 ‘큰 손’은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에 수출한 라면 금액은 1억 889만 달러로 전체 수출액(7억 6541만 달러)의 14%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10%), 일본(8%), 필리핀·태국(4%) 등의 순이다. 그러나 현지 생산을 포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크호스는 단연 미국이다.
현재 농심은 중국과 미국, 오뚜기는 베트남, 팔도는 러시아에 각각 라면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다. 지난해 농심 미국법인의 매출은 5413억 원으로 중국법인 총 매출(3200억 원)을 넘어섰다.
삼양식품은 해외에 라면 공장을 세운 첫 한국 기업이다. 1972년 브라질에서 현지 교민들이 설립한 공장을 인수해 3년간 운영했고, 1984년에는 당시 200만 달러를 투자해 LA에 연간 330만 상자의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세웠다, 현재는 매각했다.
2005년 미국 제1공장을 지은 농심은 2017년 일본 닛신을 꺾고 현지 라면 시장 2위에 오른 뒤 2021년 점유율 25.2%로 1위 일본 도요스이산(47.7%)의 뒤를 쫓고 있다. 영화 ‘기생충’ 흥행 효과에 ‘짜파구리’가 인기를 얻었고, 팬데믹 여파에 식당이 문을 닫자 ‘신라면’이 주목을 받은 효과다. 이 기세를 몰아 농심은 지난해 LA에 제2공장을 연 뒤 현재 제3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나섰다.
K라면 현지화 전략의 대표적인 예는 ‘붉닭볶음면’이다. 삼양식품은 중국에서는 마라를, 미국에선 핫소스인 하바네로라임을, 중동에선 마살라를 넣은 불닭볶음면을 선보이며 현지인 입맛을 공략해왔다. 올해 초 일본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야키소바불닭볶음면’은 초도 물량 20만 개가 2주 만에 완판되며 돌풍을 일으켰다. 불처럼 매운맛에 외국인들이 불닭볶음면을 먹고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 인증 영상을 올리는 ‘불닭 챌린지’가 생겨날 만큼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삼양식품은 현지화 전략 효과까지 더해지며 지난해 해외 매출이 처음으로 6,000억 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이는 전년 대비 56% 증가한 규모다.
오뚜기는 유일한 해외 공장인 베트남 박닌 공장에서 국내 라면(120g)보다 용량이 적은 소용량 라면(80g)을 생산해 판매한다. 베트남 국민들이 소식을 즐기는데다, K라면이 현지 물가 대비 고가인 점을 고려해 절대적인 가격을 낮추기 위함이다.
<신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