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미국 경제지표
미국 경제가 식고 있다는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본격화하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일부 지표는 둔화를 넘어 침체 가능성을 알리고 있지만 연준의 주요 인사들이 고강도 통화정책을 고수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20일 컨퍼런스보드는 미국의 3월 경기선행지수(LEI)가 108.4(2016년=100)로 전월 대비 1.2% 하락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월(-0.5%)보다 둔화 폭이 커졌으며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0.7%)보다도 낮았다.
경기선행지수는 제조업 수주나 금리 등 10가지 지표를 바탕으로 미국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도출한다. 6개월 평균 변동 연율이 -4.2% 아래면 침체 신호로 본다. 현재는 이를 넘어 -8%를 밑도는 수준이다. 컨퍼런스보드는 “앞으로 수개월에 걸쳐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더욱 강한 경제 위축이 나타날 것”이라며 “올해 중반부터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제조업과 고용 시장의 둔화 조짐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는 3월 기존주택 매매 건수가 전월보다 2.4% 감소한 444만 건(연율)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22%나 급감한 수준이다. 지난달 거래된 기존주택 중위가격은 37만 5700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0.9% 하락했다. 이는 2012년 1월 이후 최대 폭의 하락이다.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팀은 “모기지 금리가 급격히 올라 특히 생애 최초 주택 구매 수요가 제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미국 필라델피아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지역 제조업지수도 -31.3으로 2020년 5월 이후 가장 낮았다.
물가의 발목을 잡던 고용 과열도 식어가는 조짐이다. 연방 노동부는 4월 둘째 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전주보다 5,000건 늘어난 24만5,000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1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그만큼 실업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의 상당수(6,700건)는 뉴욕주에서 늘어 연초 이뤄졌던 월가 금융기관들의 해고가 시차를 두고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엘리자 윙어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정리해고는 더 많이 발생하고 노동시장 둔화 징후도 분명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권시장은 이 같은 경기 둔화 신호에 즉각 반응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6bp(1bp=0.01%포인트) 하락한 3.538%를 기록했다. 기준금리에 민감한 2년물 수익률은 10bp 떨어진 4.14%에 거래됐다.
경기 둔화 우려에도 연준 내에서는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은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이 올 한 해 동안 제약적인 수준으로 좀 더 나아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메스터 총재는 “경제는 큰 회복력을 보이고 고용시장은 매우 튼튼하다”며 “침체가 오더라도 경제가 급전직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침체론에 선을 그었다.
경제의 주요 변수인 은행의 혼란은 아직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연준이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달 19일까지 금융기관이 연준에서 대출받은 유동성은 1,439억 달러로 전주의 1,395억 달러보다 증가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은 총재는 “신용 조건이 다소 축소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따른 영향을 가늠하기는 너무 이르다”라며 “앞으로 상황을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