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애틀랜타에서 만나 함께 단체활동을 하면서 정이 들었든 사람들 중에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다. 그 중 원로 선배인 장병건 박사님은 한인사회를 위해 수고를 하시며 북한 의료선교 활동도 열심히 하고 우리 아들 결혼식 때 축배사를 해주셨으며 이광명 선배는 초창기 한인회 이사장을 역임할 때 크나큰 역할을 하고 후배들을 도우며 단점보다 장점을 중시하며 화합을 위해 힘쓰셨는데 만나면 항상 반갑게 소주잔을 권하던 호탕한 분이다. 그리고 박성용 목사님과 지형석 목사님은 각박한 이민생활 중 고통받는 동포들을 위해 활동하면서 한인사회 궂은 일들을 직접 챙기면서 정부 당국과 종교계 인사들과 한흑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며 연극활동에도 참여해주신 분들이다. 그 다음 소록도 나환자돕기 음악행사를 통해 동포사회 문화예술의 향을 적극 펼쳐왔던 문병하 씨는 나와 동갑내기다. 그리고 나와 친분이 가장 두터웠던 동갑내기 원로 김경상 씨는 캅 카운티 법원에 근무하면서 한인들을 열심히 도운 호남인데 나와는 야자하면서 지냈던 사이다. 체육회장을 역임한 이유길 씨는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정이 들었는데 그는 체육회 일이라면 열정적이고 희생적이었던 의리의 사나이다. 한돌문학회 선배 박우석 시인과도 친분이 두터웠고 시인 한만희 씨와 나는 문학과 연극을 통해 얽히고 설키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깊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지천’이란 호를 지어준 사람이다. 원재권 씨는 평통 위원장과 한국학교 이사장을 할 때 함께 일을 했고 안대위 위원장 이었던 이원석 씨와 임성옥 위원장도 행사 때마다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준 분들이다.
전 향군회장과 한국학교 이사장을 역임하고 한인사회 일을 많이 한 차경호 씨는 1990년 한국학교 아사장인 내가 한국학교 후원회 밤 행사를 할 때 함께 일을 하게 돼 정이 깊이 들었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분이 두터웠던 그리운 후배다. 전 한인회장 이승남 씨는 나와는 인연이 깊은 사이였다. 함께 한인사회를 위한 일을 많이 한 때문에 견해 차이도 많았던 사이고 이승남 회장 때문에 다운타운 7.4 퍼레이드 명예대회장을 했고 한인 총연합회 행사위원장과 구 한인회관 건립위원 및 애틀랜타 한인 역사편찬위원 등 수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 그리고 차타누가 이기수 전 회장은 연극계 후배라 정이 두터워졌는데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후배다. 그리고 무역협회 임창빈 회장은 1991년 북한을 함께 방문한 사이라 각별한 인연과 추억이 있고 한때 정들었던 송준희 씨도 너무 그립다.
그 외에도 정이 들었던 분들 중 먼저 떠난 분들이 많이 있지만 일일이 다 거론할 수가 없어 죄송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살아있기에 먼저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언제인가 요단강을 건너가 그들을 다시 만날 꿈을 아로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