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 맞아 LA서 다큐 영화 '이철수에게 자유를' 상영회
1970년대 불길처럼 일었던 구명운동 기록…"불의에 맞선 양심 이어지길"
"미국의 형사 사법 제도가 감옥에 가둔 무고한 청년 한 명을 구하려고 젊은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한인 할머니들, 기업가들, 아시아인들이 모두 나섰던 역사가 있습니다.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해야 할 역사죠."
22일 오후 로스앤젤레스 시티칼리지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이철수에게 자유를'(Free Chol Soo Lee) 상영회에서 이 영화의 공동연출자인 줄리 하 감독은 영화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영화는 미국 내 아시아계 민권운동에 큰 획을 그은 1970년대 이철수씨 구명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2021년 완성돼 지난해 미국 최대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됐다. 미 NBC 방송은 지난해 1월 이 영화와 그에 담긴 역사를 비중 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어머니를 따라 12세에 미국 땅을 밟은 이철수씨는 21세이던 1973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단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복역 중이던 1977년에는 교도소 내 싸움에 휘말려 다른 재소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는 차이나타운 살인사건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백인 목격자는 아시아인의 얼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당시 현지 신문(새크라멘토 유니언) 기자였던 이경원씨가 이런 사건 정황에 의문을 품고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 1977년 '이철수구명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이씨의 운명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여기에 이씨의 친구였던 일본계 란코 야마다씨 등을 중심으로 아시아 커뮤니티가 대대적으로 가세하고, 한인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보태는 등 구명운동이 점차 확산하면서 미국 언론에서도 주목하게 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씨는 1982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이듬해 출소해 사회에 복귀한다. 구명운동에 함께한 이민자 사회는 환호했고, 이씨는 투쟁과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뿌듯한 한때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지옥 같은 교도소에서 그의 삶은 이미 회복되기 어려울 만큼 망가져 있었고, 그는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다 2014년 62세의 나이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날 영화 상영회 후 간담회를 이끈 '이경원리더십센터'(The KW Center for Leadership)의 김도형 회장은 이철수씨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온화했고, 자신이 삶에서 겪은 모든 것에 대해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시아계 젊은이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고 싶어 하면서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이씨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인물이었던 이경원씨의 뜻을 이어받아 현재 LA에서 이경원리더십센터를 운영하며 청소년 교육·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이씨 구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마이크 스즈키씨는 이날 간담회에서 "대학 시절 철수씨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구명운동을 함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나보다 고작 다섯 살 많고 얼굴도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너무나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 운동에 계속 참여하고 싶어서 로스쿨에 가게 됐고, 이후 지금까지 32년간 국선 변호인으로 일해왔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경원씨와 함께 한인 매체에서 활동하다 이철수씨 얘기를 듣고 영화를 만들게 된 줄리 하 감독과 유진 이 감독은 이씨의 사연이 미국 이민자 역사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문제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유진 이 감독은 "그는 천사가 아니라 그저 거리에서 방황하던 소년이었다"며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정의로운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이 구명운동이 더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줄리 하 감독은 "40년 전 이씨 구명운동이 스즈키씨처럼 많은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줘 보다 양심적인 삶을 살게 하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 나서도록 이끌었듯이, 이 영화가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상영회는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주LA총영사관이 LA시티칼리지와 함께 여는 '한국 알리기 시리즈' 첫 행사로, 학교 학생과 시민에게 개방됐다.
관객 중 한 명은 영화를 본 뒤 "아주 심각하게 부당했던 일인데, (미국) 정부가 제대로 사과를 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줄리 하 감독은 미 사법 당국이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영화는 올해 안에 한국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