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에게서 듣는다
수면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할애하는 시간이다. 인생의 3분의 1 정도는 잠자는 데 쓰고 있다. 그런데 3명 중 1명꼴로 한 번은 불면증을 겪게 된다. 불면증은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요소이기에 수면이 부족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불면증을 겪으면 이들 중 85~90%가 우울증ㆍ불안장애ㆍ수면무호흡증 등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수면 치료 전문가’ 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건강한 수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잠이 저절로 오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생체 리듬을 잘 조절해 건강한 수면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잠은 왜 중요한가.
▲우리는 잠을 게으름과 연관 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잠은 게으름의 지표가 아니라 피로해진 몸을 회복하도록 돕는 필수적인 요소다. 잠은 거의 모든 건강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고혈압ㆍ당뇨병ㆍ심혈관 질환ㆍ내분비대사 질환ㆍ면역ㆍ감염ㆍ외상 회복ㆍ기분장애 등과도 관계가 깊다. 특히 마음 건강 회복에도 중요하다. 마음 건강에 문제 있는 사람에게 건강한 수면을 취하도록 유도하면 증상이 호전된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건강한 수면은 개인차가 있지만 하루 7시간 정도 잠자는 것이다. 수면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숙면을 취하도록 하는 지속성이다.
-생체리듬은 무엇인가.
▲우리 몸에는 하루를 주기로 생체리듬이 존재한다. 이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것은 ‘생체 시계’다. 모든 생명체가 생체 시계를 갖고 있다. 지구 자전에 따라 밤낮이 생기고 이에 따라 생체 시계가 작동한다. 이 생체 시계는 평소에는 느끼기 어렵고, 해외 여행 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인해 우리 몸속 생체 시계가 적응하지 못하면 피로감ㆍ불면증ㆍ집중력 저하 등을 겪는다.
생체 시계는 단순히 잠과 관련된 건 아니다. 수면과 호르몬, 심장박동 수, 체온 등 주요 신체 지표를 일정한 패턴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생체 시계는 24시간보다 좀더 길다. 우리가 정해놓은 24시간이라는 주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밀리게 된다.
따라서 손목시계가 맞지 않을 때 조정하는 것처럼 생체 시계도 조정이 필요하다. 이 조정을 위해 필요한 게 아침 일찍 보게 되는 강한 햇빛이다. 아침 일찍 강한 빛을 보면 늦어지던 생체 시계가 조정돼 15시간 뒤에 잠이 오게 된다. 그 내면에는 멜라토닌ㆍ코르티솔 호르몬 분비와 관련이 깊다.
-생체리듬을 담당하는 호르몬은 하루에 어떻게 바뀌나.
▲생체리듬을 담당하는 호르몬은 코르티솔과 멜라토닌이 대표적이다. 강한 빛이 눈의 망막을 통해 들어와 시간 유전자를 자극하면 아침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량을 늘린다. 코르티솔 호르몬은 오전 6~8시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 잠들 무렵에 가장 적게 나온다. 코르티솔 호르몬은 신체 내 혈액 흐름을 늘려 신체ㆍ뇌 기능을 활성화한다. 멜라토닌 호르몬은 주변이 어두워지면 분비된다. 오후 9시경에 나오기 시작해 오전 6~8시경에 분비량이 줄어든다. 흔히 나이 들면 잠이 없어진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멜라토닌 분비 기관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잠을 방해하는 요인을 꼽자면.
▲가장 큰 요소는 빛이다. 밤의 불빛은 수면을 방해한다. 특히 스마트폰 빛은 강한 조도의 빛이 바로 눈앞에서 보여지므로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생체 시계를 담당하는 호르몬이 빛에 의해 조절되므로 인공 조명에 의해 밤에 강한 빛을 보면 우리 몸의 생체 시계는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강한 수면을 취하려면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잠자리에서는 수면 외에 독서 등 다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침 일찍 강한 빛이 있는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다. 실내보다 바깥에서 조깅ㆍ산책으로 햇빛에 노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햇빛은 아침에 쬐는 것이 가장 좋고, 점심 무렵에 쬐면 생체 시계에는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밤에는 가능한 한 밝은 빛을 보지 않아야 한다. 숙면을 취하려면 규칙적으로 잠자고 낮잠을 삼가는 게 좋다. 아침 산책을 2주 이상하고 낮잠도 자지 않았는데도 계속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다른 수면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