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나가기’ 기능 도입
LA 한인타운에 직장을 둔 한인 박모씨는 요즘 고교 동문회가 만들어 운영하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한국의 같은 고교 출신들의 모임에 나간 뒤 단톡방에 초대된 박씨는 나이가 어리다 보니 단톡방에 있는 30여명 중 막내에 속해 대부분이 선배들이다.
그런데 동문회 모임 안내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성경 구절에 일일 명상어록, 여야로 나뉜 첨예한 정치 관련 글들마저 올라와 단톡방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다고 함부로 나갈 수 없다 보니 박씨의 마음은 어지럽다. 박씨는 “단톡방을 나가고 싶어도 나가면 퇴장 메시지가 떠 선배들이 다 알게 된다”며 “단톡방을 나가는 게 마치 동문 선배들과 손절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카오톡 단톡방 탈퇴를 놓고 한인 박씨처럼 고민할 필요없이 조용히 단톡방에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인들이 애용하고 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퇴장 메시지 없이 조용히 나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안이 한국 국회에서 발의됐기 때문이다. 카카오 역시 입법 추진 이전부터 조용히 나갈 수 있는 기능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조용한 단톡방 퇴장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22일 단톡방에서 나간 뒤 남아 있는 구성원들에게 ‘000님이 나갔습니다’라는 탈퇴 메시지가 뜨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해당 문구가 뜨지 않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하게 했다. 아울러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같은 개정안이 나오게 된 데는 한번 초대된 단톡방에서 선배나 지인, 직장 상사 등의 눈치가 보여 나가지 못하는 이른바 ‘카톡 단톡방 감옥’ 현상이 지속되면서 심리적 피로감이 늘어난 탓이다.
한인 송모씨는 “직장은 물론 동문회와 교회에서 개설한 단톡방이 10개가 넘을 정도”라며 “선배나 직장 상사, 목사님 등 연배가 높은 분들이 단톡방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보니 나오면 관계를 끊는 것으로 오해할까 봐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설사 단톡방에서 나온다고 해도 다시 초대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단톡방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한인들의 목소리가 있어 왔다.
이에 대해 카카오는 개정안 추진 이전부터 단톡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의 적용 범위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적용 시기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한인들 사이에서 한국 카카오가 조용히 나가기 기능 도입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미 글로벌 메신저앱업체들은 이 기능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가 운영하는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은 지난해부터 프라이버시 강화를 위해 3가지 업데이트 기능 중 하나로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도입했다. 중국의 위챗도 2018년부터 그룹 채팅방에서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도입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