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긴축 의지 ‘확고’…“금리인하, 내년이나 2025년”, “더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제약적 금리 수준 유지 강조…주요인사 ‘매파 발언’ 쏟아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관계자들이 수년간 고강도 통화정책이 지속될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과의 장기전을 예고하고 나섰다. 연준의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둔화)’ 인정 이후 연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시장을 향한 매파적 경고다.
하지만 물가 잡기에 사활을 건 연준과 달리 백악관은 연준의 주요 논리를 반박하며 사실상 긴축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연준의 긴축 의지가 확고할수록 연준발 경기 침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는 모양새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8일 월스트릿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는 시기는 2024년 또는 2025년이 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을 2%로 확실히 낮추려면 앞으로 몇 년 동안 제약적인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현재 시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5월 5.0~5.25%까지 올린 뒤 12월에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윌리엄스 총재는 기준금리가 5.5%까지 인상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생각해보면 동료 중 상당수가 올해 말 기준금리로 5.0~5.25% 또는 5.25~5.5%를 제시해 대다수가 5.0~5.5% 범위를 지지했다”며 “이 같은 전망은 여전히 매우 합리적”이라고 전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도 이날 강경 발언을 내놓았다. 매파로 분류되는 월러 이사는 이날 아칸소주의 한 콘퍼런스에서 “일부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상당히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보지만 경제 데이터에 그런 급격한 하락 신호는 없다”며 “나는 더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이 긴축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한동안 유지해야 할 것”이라면서 “일부에서 현재 전망하는 수준보다 금리가 더 높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윌리엄스 총재와 마찬가지로 피벗 기대를 일축하고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다. 리사 쿡 연준 이사 역시 이날 “금리 인상은 끝나지 않았다”며 “금리는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백악관은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중요시하는 ‘주거비 제외 근원 서비스’ 부문의 임금 상승률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연구 자료를 공개하며 연준의 장기전이 미국 경제의 연착륙 기회를 날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주거비 제외 근원 서비스 물가는 이발·치과 등 일상의 서비스 물가 대부분을 포함하는 영역으로 수퍼코어 인플레이션이라고도 부른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수퍼코어 부문의 현장직과 비관리직 근로자의 3개월 연율 환산 임금 상승률이 2021년 10월 9.7%에서 지난달에는 4%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전체 업종 동일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이 7.9%에서 4.4%로 하락한 것보다 가파른 속도다.
백악관 연구진은 “이 분야는 다른 범주보다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긴축된 노동시장이 인플레이션의 주요인일 것으로 추측한다”며 “그러나 이 분야의 임금은 2022년 초 이후 상당히 완화됐다”며 사실상 파월 의장의 시각을 반박했다. 긴축적 통화정책을 오래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정치매체 더힐은 이번 백악관의 조사 결과가 타이트한 고용시장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한다는 연준의 향후 주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전직 연준 관계자도 긴축 중단 목소리를 냈다. 1990년 대 연준 부의장을 지냈던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상반기 연율 11.1%로 올랐지만 하반기 1.9%에 그쳤다”면서 “연준의 임무는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것이지 경기를 침체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착륙 가능성은 이제 적어도 50 대 50”이라며 “만약 연착륙이 가능하다면 연준은 이를 시도해야 한다”고 금리 인상 중단을 촉구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