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 더 빠르다’ 연구결과
우울증·영양결핍 심화
자녀들 세심하게 살펴야
LA의 한 아파트에 홀로 거주하는 한인 김모(78)씨는 혼자 식사할 때가 많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과 함께 하거나 종종 나가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식사를 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저녁, 종종 아침도 혼자 먹기 일쑤다. 자녀들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거주지가 가깝지 않고 직장 문제로 바빠 자주 오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간단히 먹거나 거를 때도 많다.
설날(22일)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혼자서 식사한다는 뜻의 속어인 ‘혼밥’을 하는 노인들은 노년기 건강지표인 노쇠가 훨씬 더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모가 혹시 자주 ‘혼밥’하지는 않는지 자녀와 가족이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매주 1,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한인 노인 기관인, ‘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 센터’ 관계자는 “한인 노인들의 경우 평소 ‘혼밥’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당연히 독거하시는 분들이 가장 심하고, 독거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이유로 평소 혼자 식사하시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전하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와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공동 연구팀은 2016∼2017년 ‘한국 노인노쇠코호트’(KFACS) 연구에 참여한 노인 2,072명(70∼84세)을 대상으로 식사 유형에 따른 노쇠 변화를 2년이 지난 후와 비교 분석한 결과 노쇠와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노인의학 분야 국제학술지(Experimental geront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노쇠란 체중 감소, 근력 감소, 극도의 피로감, 보행속도 감소, 신체 활동량 감소에 이르는 5가지 지표를 측정했을 때 각각 평균치의 하위 20%에 속하는 경우가 3개 이상일 때를 말한다. 1∼2개만 해당하면 노쇠 전 단계, 하나도 해당하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본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노인들은 연구를 시작할 당시 노쇠에 해당하지 않았으며, 혼자 밥을 먹는 비율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조사 모두 17.0%(353명)였다. 연구팀은 혼자 식사하는 노인과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는 그룹의 노쇠 정도를 비교 분석했다.
이 결과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다가 2년 후 혼자 식사하게 된 그룹(136명)의 노쇠 발생 위험은 계속해서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는 그룹(1,583명)에 견줘 61%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팀은 이른바 ‘혼밥 노인’의 노쇠 위험이 높아지는 원인으로 영양결핍과 사회적 고립뿐 아니라 우울감을 제시했다. 줄곧 혼자 식사하면서 생긴 우울감이 영양결핍과 고립을 불러 결국 노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특히 노쇠 진단의 5가지 지표 중 체중이 감소할 위험이 ‘혼밥 그룹’에서 약 3배가량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성별로는 여성 ‘혼밥군’에서 극도의 피로감과 보행 속도 감소가 발생할 확률이 각각 1.6배, 2.8배 높아지는 특징이 관찰됐다. 두 차례의 조사에서 모두 홀로 식사를 지속한 그룹은 노쇠 지표 중에서도 체중 감소(2.39배)와 근력 감소(2.07배)가 두드러졌다.
반면 연구 시작 당시에는 혼자 식사하다가 2년 후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 새로 생긴 그룹(136명)에서는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비율이 유의하게 줄어드는 등 ‘혼밥’ 때보다 일부 노쇠 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식구(食口)란 단어 뜻 그대로 끼니를 함께할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연구”라며 “만약 함께 식사하다가 홀로된 부모님이 계신다면 혼밥에 따른 우울감이 있는지 등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야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