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공기 오염, 소아천식… 정부기구“비안전 제품 금지”언급
공화당 수호대 자처 서명운동, 속내는 화석연료 감축 반대
긴급! “우리 집 가스레인지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조 바이든과 민주당이 ‘모든’ 집에서 가스레인지를 금지하려고 해요. 당신 집을 포함해서요.”
미국 공화당이 ‘가스레인지 수호대’를 자처하며 민주당과 맞붙었다. 공화당은 온라인 플랫폼 윈레드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등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 주방의 필수품인 가스레인지가 여야 충돌의 원인이 된 건 왜일까.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바이든표 기후정책’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속내가 숨어 있다.
미국 정치권의 가스레인지 전쟁은 한 연구에서 미국 내 소아천식의 12.7% 이상이 가스레인지 탓이라고 지목하며 시작됐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땐 실내공기를 오염시키는 질소산화물 등을 배출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도 메탄을 내뿜는다고 연구는 지적했다.
미국 연방정부 기구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의 리처드 트럼카 주니어 위원은 “안전하지 않은 제품은 금지될 수 있다”고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다. 이는 가스레인지를 규제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됐다.
공화당은 “민주당과 정부가 전국 4,000만 가구에서 가스레인지를 뺏으려 한다”며 가스레인지 사용자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로니 잭슨 텍사스주 공화당 하원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신 나간 백악관이 우리 집 가스레인지를 뺏으려면 날 먼저 죽여야 할 것”이라면서 서명운동을 독려했다.
논란이 커지자 알렉산더 호엔-사릭 CPSC 위원장은 11일 성명에서 “CPSC는 가스레인지를 금지할 생각도, 그럴 계획도 없다”라고 진화했다. 백악관도 “바이든 대통령은 가스레인지 금지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갑작스러운 가스레인지 논란은 미국 기후정책 전선의 공방전이 얼마나 격렬한지를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취임 직후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인 미국의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는 등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른다. 반면 화석연료의 필요성을 두둔하는 공화당은 기후정책이 경제성장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고 본다. 공화당은 가스레인지 금지가 화석연료 탄압의 상징이라며 여론의 반발을 키우고 있다.
미국 곳곳에서는 기후 의제를 둘러싼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주정부 성향에 따라 지역별로 화석연료 퇴출 여부가 갈리면서다. 민주당 소속 캐시 호철 뉴욕주지사는 11일 주정연설에서 “뉴욕이 신축 건물에서 가스 시설을 전면 금지하는 최초의 주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시 차원에서는 뉴욕시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에서 유사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공화당과 가스산업계 동맹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미국가스협회는 공화당이 우세한 20개 주에서 가스를 금지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었다. 공화당의 마크 드와인 오하이오 주지사는 가스를 최근 ‘재생에너지’에 포함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가스레인지의 해악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1980년대부터 위해성이 지적됐지만 이제야 처음으로 정책 입안자들이 관심을 두고 조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연방 환경청 과학자들은 1986년 “가스레인지가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CPSC에 보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