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핼로윈에 무지·문화적 차이로 대처 미흡
‘핼로윈’이라는 서양의 전통을 따르는 젊은 세대와 이를 노골적으로 비웃는 기성 세대의 문화적 차이가 당국의 안일한 대처를 불러 이태원 압사 비극을 초래했다고 31일 LA 타임스가 지적했다.
이 신문은 2019년 당시 스무살이던 서울 근교 출신 대학생 한나 이씨가 핼로윈 축제를 즐기러 이태원에 갔던 기억을 되새기며 가족과 나눈 대화를 통해 세대간 문화차이가 존재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다시 이태원에서 열리는 핼로윈 주말 행사가 궁금하다는 이씨의 말에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왜?”하며 “외국문화 아냐? 한국의 것도 아닌데”라고 의아해했다고 밝혔다. 결국 올해 핼로윈 주말 이태원에 10만명이 몰린다는 말을 듣고는 가지 않기로 했다.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을 따라 움직이는 인파들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150명 이상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을 당한 이태원 압사 참상에 희생되지 않은 운 좋은 젊은이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사람들 중 98명이 여성이고 최소 4명이 10대 청소년이었다. 중국, 일본, 러시아, 이란, 프랑스, 호주,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베트남, 태국, 카자흐스탄, 우즈백, 스리랑카 등에서 온 외국인도 14개국, 26명에 달했고 주한미국대사관은 트위터를 통해 2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일부 목격자들과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와 서양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와 이러한 외부의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비웃는 기성세대의 문화적 차이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는 첫 핼로윈을 맞아 엄청난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관계당국의 적절한 사전 예방조치가 부족했다고 비난했다.
음악 사업 전문가인 28세 토르스텐 잉발센은 “정부, 특히 지역 당국의 과실이다. 10만명이 운집하는 데도 앰블런스가 동원되지 않았다”며 “매년 10월 이태원에서 열리는 핼로윈 파티는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고 토로했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일 이태원에는 137명의 경찰관만이 현장에 배치돼있었다. 5만5,000명이 참석한 BTS 콘서트를 위해서는 2,700명의 안전요원과 자원봉사자, 또 1,300명의 경찰들이 배치된 것과 판이한 상황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사전 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경희대 이택광 교수는 “이태원 행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비극적 사태가 일어났다”며 “문화적, 세대적 차이를 이해하고 고려하지 않으면 공공 안전은 흔들릴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 영어 학교와 유치원에 다녔던 젊은이들이 서양 전통에 익숙해지면서 핼로윈 행사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러한 학교들은 미국과 다른 곳에서 온 원어민 영어 구사자들을 고용해 한국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트릿 오어 트릭’을 가르쳤다. 사실 미국에서는 핼로윈이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이지만 한국에서는 성인들의 잔치행사로 변질될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태원은 오랫동안 폐쇄된 주요 미군 기지 옆에 있고 아직도 많은 외국인 거주자들이 살고 있어 핼로윈 사탕을 받으러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곳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