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소비자물가지수 영향은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8.5% 올라 직전인 6월 상승률(9.1%)에 비해 상승폭이 확연히 꺾인 것으로 발표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하락 추세를 보이는 ‘피크아웃’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미국 경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꼽히는 개솔린 가격은 6월 고점 대비 20% 가까이 떨어졌고 7월 온라인 물가는 2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이에 따라 물가 완화를 위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고 있는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긴축 행보가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부동산과 임금 등 물가 하락을 가로막는 복병이 상당수 남아 있어 높은 수준의 물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하다.
경제 매체 CNBC는 전날 전국 개솔린 가격 평균이 갤런당 4달러대로 6월 최고치(갤런당 5.01달러)보다 20% 가까이 하락했다고 전했다. CNBC는 “올 들어 무서운 기세로 오르던 개솔린 값이 7월 한 달 내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물가 정점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온라인 물가를 집계하는 어도비디지털물가지수(DPI)는 7월에 전년 동기 대비 1% 하락해 6월까지 장장 25개월을 이어온 오름세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DPI에 포함되는 18개 품목 가운데 1년 전보다 가격이 낮아진 것은 전자 제품과 귀금속·의류·귀금속 등 7개에 달한다.
글로벌 공급난으로 상승 압력을 받았던 세계컨테이너지수(WCI)는 1년 전보다 29% 낮아진 상태다. 물류 난맥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담이 덜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조사한 1년 뒤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6월 6.8%에서 7월 6.2%로 떨어져 2013년 6월 조사 개시 이래 최대 낙폭을 보였다.
다만 물가 정점이 지났다고 낙관하기는 아직 어렵다. 물가를 끌어올렸던 에너지와 식품 가격 오름세가 다소 완화됐지만 임대료와 임금 등은 여전히 물가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6월에 전월 대비 0.8% 올라 36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던 임대료는 7월에도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계속되는 구인난으로 7월 시간당 임금은 1년 전보다 5.2% 올라 예상치(4.9%)를 웃돌았다. 시장에서는 에너지나 중고차 등 특정 품목에 쏠렸던 가격 상승 압박이 의료비를 포함한 전방위 품목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준은 일단 피크아웃 여부와 관계없이 금리 인상의 고삐를 계속 죄겠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최근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아직 보지 못했다”며 “9월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회의에서 직전인 7월과 유사한 규모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해 9월에 3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7월 CPI로 물가 상승률이 시장의 전망을 밑도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연준이 무리하게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7월 CPI가 발표된 직후 연준의 금리 인상 규모를 예측하는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 전망은 66.5%로 자이언트 스텝 전망(33.5%)보다 2배 높았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 신호가 커지는 점도 연준의 금리 속도 조절을 예상케 하는 요인이다. 이날 미 노동부가 발표한 올 2분기 미국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은 1년 전 대비 4.6% 감소해 1분기(7.4%)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후퇴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