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경기침체 경고음’ 전방위 확산
전 세계 제조업 재고가 올 1분기 들어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망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완화에 따른 수요 증가에 대비해 기업들이 쌓아온 재고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 둔화에 직면하면서 ‘과잉 재고’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경기 침체 우려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2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시장 조사 업체 퀵과 팩트셋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 2349개 상장 제조업체의 올 3월 말 현재 재고가 전 분기 대비 970억 달러 증가한 1조8,696억 달러로 집계됐다. 증가 폭과 총액 모두 10년 만에 최대치다. 신문은 공급난에 대응해 기업들이 쌓아둔 원재료나 출하하지 못한 제품들이 늘어나면서 재고가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팬데믹 완화로 급증했던 제품 수요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둔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문은 ‘재고 과잉’으로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정체될 경우 경기침체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월가에서도 과도한 재고 수준을 경기 침체의 징후로 보고 있다. ‘돈나무 언니’로 알려진 캐시 우드 아크투자관리 대표는 28일 “45년 경력에서 요즘처럼 재고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본 적이 없다”며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제조 업체 포드는 올 1분기 매출액이 8% 감소하는 사이 재고는 21%나 급증한 146억 달러를 기록했다. 25년 만에 최대 규모다. 공급망 붕괴로 조립에 차질을 빚은 차량이 5만 3000대에 달하면서 완성차 재고는 36%나 급증했다. 문제는 이렇게 쌓인 재고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인플레이션과 맞물려 기업과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누적된 기업 재고가 경기 침체의 요인으로 집중 조명되는 것은 최근의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공급망 혼란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 완화에 따른 수요 급증에 대응해 재고를 쌓아뒀던 기업들이 갑작스러운 소비 위축에 직면할 위험이 커진 것이다. 재고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감산에 돌입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기업 활동 위축은 결국 경기 침체를 심화하는 요인이 된다.
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관론은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물가와 맞물려 소비 냉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코노믹아웃룩그룹의 버나드 바우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소비자신뢰지수와 기대지수가 동반 하락하면 대개 소비도 함께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지난달 소매 판매는 4월보다 0.3% 줄어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더해 한동안 가파른 물가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인들이 쉽게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날 발표된 컨퍼런스보드의 12개월 기대 인플레이션은 8%로 1987년 이후 가장 높았다.
미국 소매 업체들은 이미 재고 리스크의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초만 해도 코로나19 팬데믹 완화로 소비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재고를 늘렸지만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며 소비도 위축됐기 때문이다.
미국 2위 유통사인 타깃이 지난달 2분기 영업이익률을 5.3%로 예측했다가 3주 만인 이달 7일 2%로 낮춰 잡은 것이 대표적이다. 타깃은 올 1분기 재고자산이 전년 동기 대비 43%나 증가한 탓에 재고 조정을 위해 이익률을 하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규 주문을 취소하고 할인 판매를 해서라도 재고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아마존과 월마트·홈디포 등 다른 소매 업체들도 1분기 매출이 한 자릿수 증가에 그친 반면 재고는 각각 46%, 32%, 31%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