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음·과식·야식·짜고 달게 먹는 식습관 등
잘못된 생활습관 멈추고 운동으로 조절해야
병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일까? 투병(鬪病)이란 말에 싸운다는 뜻의 투(鬪)가 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우리는 코로나19(COVID-19)에서 여러 차례 지켜보기도 했다.
바이러스나 세균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고혈압ㆍ당뇨병ㆍ만성콩팥병 등 만성질환도 싸워서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주는 게 식품이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고혈압에는 OO이 좋다’거나 ‘당뇨병에는 △△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식품, 건강기능식품 등을 사 먹기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이른바 ‘당뇨병에 좋은 것’을 찾아보면 돼지감자, 현미, 보리밥, 미꾸라지, 오디, 두릅나물, 뽕잎차, 여주 등이 소개돼 있다. ‘고혈압에 좋다’는 것도 양파, 청국장, 감나무잎, 버섯, 비트 등 다양하다.
기호에 따라 식품으로 섭취할 수는 있겠지만, 혈당이나 혈압 강하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신뢰할 만한 설명은 없다.
50대 의사 L씨는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키 172㎝, 체중 84㎏으로 체질량지수(BMI)가 28.4인 과체중이었다. 살이 좀 쪘지만 무심코 넘겼는데 어느 날부터 무척 피곤하고, 물을 자주 들이켜는 습관이 생긴 것을 깨닫고 내과에서 진료를 받았더니 당뇨병으로 진단됐다.
L씨 부인이 그 사실을 시댁과 친정에 알렸고, 깜짝 놀란 모친과 장모는 돼지감자와 누에 가루, 여주 등을 구해 보내는 등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L씨는 양가 어른들의 정성을 마다하고 내과 의사와 상의해 체중부터 줄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로부터 4개월 동안 그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2시간씩 걷고 식사량을 줄였으며, 간식과 야식은 끊었다. 그는 “걷는 양이 많아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걸었다”고 했다. 그 결과 체중이 14㎏이나 줄어 70㎏으로 내려갔다.
검사 결과 혈당은 정상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 후로도 체중 70㎏을 지키고 있는 덕에 혈당은 계속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전해 들은 모친과 장모는 서로 자신이 보내준 식품이 효과가 있어서 당뇨병이 나았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L씨의 혈당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은, 사실상 유일한 공로자는 그 어떤 식품도 아닌 체중 감량이었다. L씨가 싸운 대상은 당뇨병이 아니라 과식하고 운동이 부족했던 자신의 잘못된 생활습관이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비만율이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보고서 2021’에 따르면 2020년 비만율은 38.3%로 전년의 33.8%보다 4.5%포인트나 높아졌다.
비만율 증가로 인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혈압ㆍ당뇨병ㆍ만성콩팥병 등 만성질환이 나빠진 사례는 이미 진료실에서 숱하게 볼 수 있다.
이분들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약도 먹고 있으나 증상이 나빠진 사람 중에는 ‘몸에 좋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사례도 생길 것이다.
고혈압, 당뇨병과 직접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이기려면 그 질환을 초래한 잘못된 생활습관과 이별해야 한다. 그 시작은 과음, 과식, 야식, 짜고 달게 먹는 식습관 등을 멀리하면서 운동으로 체중을 줄이는 것이다.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