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4대 걸친 이민 서사시
[인터뷰] 애플TV + ‘파친코’ 코고나다·저스틴 전 감독
“파친코는 조작되고 불공정한 게임이고 한낱 기계에 불과하죠. 그러나 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지난주 애플TV+를 통해 베일을 벗은‘파친코’를 공동 연출한 한인 2세 감독 저스틴 전 감독의 말이다.“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첫 문장의 함의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소설이 8부작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로 탄생하기까지는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의 열정이 존재했다. 원작을 쓴 이민진 작가를 비롯해 전 감독과 코고나다 감독, 창작자인 쇼 러너 수 휴, 총괄 프로듀서 테레사 강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지난 14일 버추얼로 진행된 ‘파친코’ 제작진과 출연배우 인터뷰에서 코고나다 감독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격변기를 살아낸 자이니치 가족의 이야기다. 제작진들 모두가 한국을 떠나온 이민자라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뿌리를 찾아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파친코’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선자의 어머니 양진(정인지)부터 어린 선자(전유나), 젊은 시절의 선자(김민하), 노년의 선자(윤여정) 한인 이민 4대에 걸친 이야기다. 선자를 불행의 나락에 빠뜨리는 한수(이민호)와 남편 이삭(노상현), 손자 솔로몬(진 하) 등이 1910년부터 1989년까지의 부산, 뉴욕, 오사카를 넘나들며 극을 전개한다.
부산의 작은 섬, 영도에서 하늘이 점찍어준 딸 선자가 태어나는 장면부터 운명의 남자와 몰래 사랑을 하고 일본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장면까지 정중동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1~3부와 일본의 간토(관동) 대지진을 다룬 7부는 코고나다 감독의 작품이다.
또, 이주를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와 고난의 길을 걷는 4~6부, 생존을 위해 김치장사를 택하는 선자의 강인함을 그린 8부는 저스틴 전 감독이 연출했다.
전 감독은 “자기성찰적인 코고나다는 조용히 앉아 있으면 스탭과 배우들이 주위로 몰려들어 대화가 이어진다. 내 경우는 과장스럽다 싶을 만큼 현장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텐션을 높인다. 이렇게 스타일은 정반대지만 우린 서로에 대한 이해와 팀플레이라는 믿음이 강했기에 정·동이 양립하는 ‘파친코’를 창조해냈다”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이어 코고나다 감독은 “공동 연출은 전적으로 창작자이자 제작자인 쇼러너 수 허의 비전이다. 매일 같은 세트장에서 같은 카메라로 촬영을 했지만 모든 에피소드가 정확히 같은 톤을 지녀야만하는 여타의 TV 시리즈와 달리 자율성이 주어졌다. 우리 둘은 아시안 아메리칸 시네마의 특정 영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파친코’를 통해 뚜렷하게 다른 목소리로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고수하며 한 방향을 쳐다보던 두 감독은 2017년 선댄스 영화제와 2021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나란히 진출했다.
배우 출신의 저스틴 전 감독은 감정 이입을 극대화하며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영화적 기법이 탁월하다. 비디오 에세이 작가인 코고나다 감독은 회화적 영상미로 인간의 관계를 관조하며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해 한국, 미국, 일본 3개국 언어로 제작된 글로벌 프로젝트 ‘파친코’는 신예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윤여정의 치열한 연기 내공을 덧입으며 몰입도를 높인다.
코고나다 감독은 “젊은 시절의 선자로 캐스팅한 김민하는 오디션 테입을 보는 순간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 배우였고 윤여정의 연기는 다채로운 운율과 깊이로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고 밝혔다.
전 감독도 “개연성을 지닌 등장인물 모두가 스토리라인에서 중요했지만 윤여정 선생님이 연기한 노년 시절의 ‘선자’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파친코’를 그의 연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애플 TV+에서 볼 수 있는 ‘파친코’는 현재 3편의 에피소드를 시청할 수 있으며 오는 4월29일까지 매주 금요일 한 편씩 순차 공개된다.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