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제5회 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작] 도장 파던 노인

지역뉴스 | 생활·문화 | 2021-02-02 14:14:31

문학회,문학상,수상작,태유림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거의 40년 전 일이다. 내가 중국 방문 풀브라이트 미국 교수단의 일원으로 중국 광저우(廣州)에 머무를 때다. 오후에 한가한 틈이 생겨 우리가 머물던 호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길모퉁이에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하고 허름한 가게가 있었다. 가게 문 앞에 세워놓은 광고판의 붉은 글씨가 내 눈을 끌었다. 모택동 주석의 인장을 새겨주었던 사람이 도장을 새긴다고 했다.

 

의아했지만 모택동이란 말에 구미가 당겼다.  사망한 지 10년 가까이 되긴 했어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영웅이며 온 중국 국민의 존경을 받는 모택동 아닌가. 감히 그의 이름을 허위로 내걸고 장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마침 그 며칠 전 광저우 시내 면세점에 들렀을 때 아주 예쁘장한 전각돌 하나를 산 것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서예 공부를 했던 일이 있어 전각과 낙관 인장에 관심이 있었다. 그 돌을 여기서 새기면 안성맞춤인 듯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좁은 가게 벽면엔 빛바랜 그 도장포에 관한 신문 스크랩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도장포 사진과 모택동이라는 글자도 보였다. 안쪽 구석에서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도장을 파던 까무잡잡한 노인이 나를 힐끗 올려다봤다. 내가 중국말을 못 하는 줄 알자 가격표를 내밀었다. 서투른 필담과 몸짓이 뒤따랐다. 내 돌에 '孤村散人(고촌산인)' 넉 자를 새기는 데 얼마가 들지 물었다. 고촌은 내가 서예 공부할 때 내 스승에게서 받은 '외딴 마을'이라는 의미의 호다. 산인은 보통 아호 끝에 붙이는 '한가한 사람'이라는 뜻. 붓대 놓은 지는 오래됐으나 내 호를 새긴 낙관 인장은 언젠가 하나 만들려고 늘 벼르고 있었다. 한 자 새기는데 15위안이고 돌 옆면에 측관을 더하면 10위안, 합계 70위안이라고 했다 (미국 화폐로 23불 정도). 그곳 카펫 공장 노동자의 월급이 30불 미만일 때다. 다시 오겠다며 가게 문을 나섰다.

 

그다음 날 아침 서둘러 호텔 방에서 전각돌을 찾아들고 그 도장집을 다시 찾았다. 노인이 내가 내민 돌을 받아 들고 앞뒤로 돌려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이거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면세점에서 샀다니까 얼마 주었는지 다시 물어왔다. 옅은 회색에 새빨간 핏빛 무늬가 휘감기듯 돌 안에 박힌 것이 마음에 들어 25위안(미화 10불 미만) 주고 산 돌이다. 노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보통 돌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후일에 안 일이지만 그 돌은 중국에서 전각이나 돌 조각을 하는 사람들이 으뜸으로 여기는 계혈석(鷄血石)이었다. 계혈은 '닭 피'니 돌 속에 박혀있는 붉은 무늬를 보고 지은 이름이다. 내가 그 돌을 시세보다 엄청나게 싸게 샀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노인이 오후에 와서 인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미국에 돌아와서 얼마 후 그 인장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분명 잘 보관한다고 했는데 그 행방이 묘연했고 어디에  있겠지 하고  더 찾지 않았다. 최근에 옛 서류 보관 상자들을 정리하며 오래된 편지 더미 밑에서 그 인장이 나왔다. 수십 년 만에 보는 인장 측면에 새겨 놓은 노인의 측관 글씨가 방금 깎은 듯 선명했다. "을축년 8월 74세 매노(梅奴) 노인이 양성(羊城)에서 새겨 고촌 선생에게 드린다(孤村先生雅正乙丑八月七四老人梅奴刊于羊城)". 양성은 광저우의 별칭이다. 다된 인장을 노인에게서 건네받을 때 인면의 '孤村散人' 넉 자에만 신경을 쓰고 옆에 판 작은 글씨는 대충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기억이 난다. 

 

문득 매노 노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가 모택동의 인장을 새겨주었다는 기억은 생생하지만 그를 알려고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택동이 무명 시절에 어쩌다  도장 한 번 새겨주고 그의 명성을 이용해 장사하는 도장장이 노인이려니 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깜짝 놀랐다. 매노는 중국 현대 10대 전각가로 꼽히는 사한화(謝翰華)의 필명이었다. 전각뿐 아니라 서예에도 뛰어났고 '전각 왕'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생전에 모택동은 같은 고향(후난성) 출신인 매노 노인이 새긴 인장 두 개를 주로 시를 쓴 뒤 낙관하는 데 썼고 현재 중국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갑자기 모래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러나 기쁨과 흥분은 잠시, 귀한 보석을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던 아쉬움과 회한이 밀려왔다. 비록 40년 가까이 된 옛일이지만 전각의 명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볼품없는 가게 구석에 혼자 앉아 초췌한 주제꼴을 하고 도장을 파고 있던 그 노인이 그렇게 뛰어난 예술가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의 명품을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을. 아쉽기도 하다.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고정 관념이 얼마나 우리를 눈멀고 어리석게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매노 노인은 내 인장을 새겨준 6년 후인 1991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했음을 여기에 덧붙여 둔다.

[제5회 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작] 도장 파던 노인
[제5회 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작] 도장 파던 노인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한인 부동산 전문인들 ‘빛났다’
한인 부동산 전문인들 ‘빛났다’

북동부 애틀랜타 메트로 부동산 협회(NAMAR) 주최 '2025 서클 오브 엑셀런스' 시상식에서 한인 전문가들이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미 주류 시장 내 위상을 높였다. 상업용 부동산 분야는 마스터 리얼티 김영자 브로커가 1위를 차지했고, 파트너 팀 부문에서는 켈리 최 대표 팀이 1위, 김성희 부동산 팀이 톱 프로듀서에 올랐다. 다수의 한인 수상자가 유튜브 등 미디어를 통해 지역 사회와 활발히 소통하며 신뢰를 쌓은 점이 돋보였다.

조지아 소도시, ICE 일방 독주에 ‘한 방’
조지아 소도시, ICE 일방 독주에 ‘한 방’

소셜서클, 구금시설 부지 수돗물 차단“인프라 용량 문제 해결 전까지 유지” 조지아 소도시 소셜서클시가 연방이민세관단속국( ICE)의 일방적인 대형 이민자 구금시설 추진에 급제동을

〈한인타운 동정〉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알레르기 세미나'
〈한인타운 동정〉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알레르기 세미나'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알레르기 세미나유나이티드 헬스케어는 3월 20일 금요일 오후 2시 30분 둘루스 사무실(3350 Steve Reynolds Blvd, Suite 301)에서 이

“임대주택 잘 관리해 줄게” 고객 돈 빼돌린 귀넷 부동산 업체 대표 기소
“임대주택 잘 관리해 줄게” 고객 돈 빼돌린 귀넷 부동산 업체 대표 기소

브라보 프로퍼티 매니지먼트 대표귀넷 대배심, 횡령혐의 중범죄 기소피해규모 60여만달러…파문 확산 임대주택 관리와 HOA(주택소유주협회) 운영을 맡아온 귀넷 소재 부동산 관리업체 대

귀넷 카운티 "전과자 낙인 대신 기부금으로 해결"
귀넷 카운티 "전과자 낙인 대신 기부금으로 해결"

경범죄 '사전 전환 프로그램' 전격 확대 귀넷 카운티 주민들이 경범죄로 인한 장기적인 전과 기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넓어진다. 리사마리 브리스톨 귀넷 카운티 솔리시터

우미노시즈쿠후코이단 신장과 간 건강 유지에 도움
우미노시즈쿠후코이단 신장과 간 건강 유지에 도움

침묵의 장기 신장과 간, 평소 관리가 중요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인 신장과 간은 초기에는 이상이 생겨도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때문에

애틀랜타 공항 보안검색대 ‘긴~줄’ 여전
애틀랜타 공항 보안검색대 ‘긴~줄’ 여전

17일 오전 2시간 이상 소요TSA 직원 3명 중 1명 결근 강풍 등 기상악화는 완화됐지만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 보안검색을 위한 대기시간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연방정부

한인 변호사, 한인 법학도 지원 장학 프로그램 설립
한인 변호사, 한인 법학도 지원 장학 프로그램 설립

뉴욕 활동 이수연 변호사NY∙NJ 로스쿨 학생 대상  뉴욕 한인변호사협회(Korean American Lawyers Association of Greater New York, KA

출산기 코요테…주거지에도 서식지 ‘조심’
출산기 코요테…주거지에도 서식지 ‘조심’

UGA연구진 생태연구 공개 “새끼 보호 위해 방어행동” 조지아 전역에서 코요테 출산기가 시작되면서 주민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주거지 인근에도 코요테 서식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

김주하 학생 '나의 꿈 말하기대회' 대상
김주하 학생 '나의 꿈 말하기대회' 대상

한국학교 동남부협의회 주최 대회 재미한국학교 동남부지역협의회(회장 노시현) 주최 ‘제21회 나의 꿈 말하기대회’가 지난 14일 슈가로프 한국학교에서 열렸다. 각 학교에서 예선을 치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