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조수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Time and tide wait for no men).”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것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하나님께는 공평의 원칙으로, 사람에게는 기회의 원칙으로 적용되는 것이 <시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때 시간을 창조하셨습니다(창1:14). 그때 이후로, 이 창조질서는 <사계절의 엄연한 원칙>으로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오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계절의 겨울과 인생의 겨울을 함께 맞이하고 있습니다. 곧 바다는 얼음으로 얼어서 어떠한 왕래도 할 수 없는 혹한이 계절의 코너에서 도래하고 있습니다. 가장 보고싶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그 시간의 임박성을 편지의 마지막 도입부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 4:9) 그리고, 끝인사의 결론부분에서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딤후4:21)
“겨울 전에”, 이 말씀의 뜻은 <인생이 짧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고 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냉엄한 선포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중요한 천국의 메시지를 선포하실 때, <자연의 메시지>를 통하여 선포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사도 바울 역시 <자연의 메시지>를 통하여 임박한 개인의 종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겨울이 오기 전의 전조입니까? 지금 가을은 점점 채색되어가고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겨울의 전조입니다. 감옥 안의 사도 바울에게 지난 날의 아름다운 인생의 추억이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인생의 희열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의 종말>이 임박함을 알려주는 전조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후회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의 인생 가운데 관계의 매듭을 풀고 싶은 것을 “네가 올 때에 마가(요한)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디모데를 향하여 이 편지의 진지함을 나타내는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누구보다도 가장 세밀하고 정확하게 정리해 둔 자가 사도 바울입니다.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
요즘의 시대와 판이하게 다른 시대입니다. 녹음기에 녹음을 남길 수도, 컴퓨터 칩을 통하여 메모리를 남겨둘 수도 없는 <A.D. 66-67년경>에, 본인이 죽고나면 거기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속히 오라고 한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가지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포도가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크리스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지 아니하면, 즉,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크리스천은 아무 쓸모 없음을 선포하신 <요한복음서>를 마가 요한이 기록한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사도 바울의 가죽 종이에 써 놓았던 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현명한 대학자입니다. 그는 <학자의 혀>를 가진 사람입니다. 당대의 최고 석학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섭렵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이제 개인의 종말이 임박함을 <겨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전염병으로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지구의 종말, 개인의 종말이 이와같이 찾아옵니다. 지금 지구는 종말의 예행연습을 미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겨울>이라 선포합니다. <겨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의미합니다. 겨울은 <우리 인생의 임박한 종말>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복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