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로 대선을 꼭 30일 남겨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이라는 초대형 변수에 맞닥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었을 시나리오라 일단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이 사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전염병에 걸렸다는 중대 변수가 앞으로 한 달간 어떻게 전개돼 나갈지는 누구도 짐작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은 일단 ‘올스톱’ 상태다. 지난 2일 확진을 공개하고 나서 워싱턴DC 인근 월터 리드 군병원에 입원해 발이 묶였다. 선거 유세 관련 일정도 일단 모두 연기하거나 화상으로 전환됐다. 경합주를 중심으로 한 현장 유세는 물론 시도 때도 없는 인터뷰와 기자회견, 트윗으로 유권자들에게 쉼 없이 눈도장을 찍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대한 타격이다.
백악관 경호당국의 철통같은 보호에도 감염을 막지 못하면서 경제 정상화를 향한 그간의 메시지에도 일대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코로나19가 별것 아닌 것처럼 국민을 안심시키려다 자신이 감염돼 버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받아든 셈이다.
반대로 바이든 후보에게는 대놓고 말을 못 할 뿐이지 호재 중 호재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확진을 발표하고 급기야 입원까지 해 꼼짝도 못 한 날, 바이든 후보는 경합주인 미시간주 행사를 그대로 진행했다.
연설 중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마스크에 초점을 맞춰 트럼프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했다. 마스크 쓰길 꺼리다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 벌리기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원과 치료 등으로 옴짝달싹 못 하는 사이 바이든 후보는 그간 적극적으로 하지 않던 대면 선거운동을 늘리며 경합주 득표전에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후보는 전국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후보를 앞서고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미국 대선의 승자는 각 주별로 득표율이 높은 후보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방식이어서 전국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전국 여론조사가 전체적 민심을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멀찌감치 앞서고 득표수도 300만표나 많았으나 경합주들이 트럼프 대통령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패배한 2016년 대선이 민주당에는 상당한 트라우마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에 걸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1919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그러나 이번엔 재선을 노리는 현직 대통령이 대선 목전에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더욱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고 있지만 현재 74세라 신속한 완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만에 하나 상태가 악화하고 선거운동은 물론 대통령 업무 수행에도 지장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시계 제로의 형국으로 빠져들게 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후보 역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점에 특히 유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네거티브 광고를 중단했다. 정적이기는 해도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까지 한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하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비판적 기조를 유지하되 선을 넘지 않도록 메시지 관리에도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잦은 말실수가 약점으로 꼽히는 바이든 후보라 더욱더 그렇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치료 경과가 한동안 대선 판세에 직접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 발이 묶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미 혼돈 상태인 대선 가도가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과 입원으로 더욱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영역에 내던져졌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