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 무디 목사님이 자기의 동역자요 제자였던 R.A 토레이 목사님과 함께 시카고의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시카고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여보게 토레이. 나는 하나님께서 여기서 뛰어 내리라고 명하시면 뛰어 내릴 수 있을 것 같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무디가 그 정도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인생을 살았음을 알 수 있는 일화 입니다. 이 말 속에서 주님을 향한 그 분의 애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구할 때 무얼 기준으로 삼겠습니까? 당신 의견에 철저히 반대하고 대드는 사람을 당신이 하는 일에 참여 하도록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도구가 되려는 열망이 있다면 당신 삶에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무엇 이겠습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내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서라도 주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갈렙은 온전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우였던 옷니엘에게도 이러한 자세가 이어져 내렸습니다. 성 프란시스 형제단에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그는 그 형제단에 가입 하기를 원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함께 수도하며 전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형제단의 위원회는 열의가 가득한 이 청년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고심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란시스가 젊은이에게 과제를 한 가지 주었습니다. “젊은이 저기 배추가 한 포기 있는데 저 배추를 한 번 거꾸로 심어 보겠는가.?” 왜 프란시스가 이런 질문을 했겠습니까? 그것은 내 상식에 맞지 않고 내 생각에 합하지 않아도 영적인 스승의 지시에 순종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시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지배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 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세상에는 제주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허다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우리 생각에 하나님이 저토록 재주가 많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쓰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이따금 우리 주변에 있는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이 예수만 믿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이 예수를 믿고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그가 가진 재능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순종의 자리에 있느냐.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주께 삶을 헌신할 용의가 있느냐의 문제 입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의 자질이 어떤 재주보다 중요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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