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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버서 음모론’의 노림수

지역뉴스 | | 2020-08-20 10:10:58

뉴스카럼,버서,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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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와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출생이 아닐지 모른다는 이른바 ‘버서(birther)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이면서부터였다. 오바마의 출생지를 둘러싼 버서 논란은 오바마가 출마했을 당시부터 극우 세력들에 의해 제기됐으나 출생기록 증명이 공개되고 법원이 이런 주장을 잇달아 기각하면서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잠잠해지는 것 같던 버서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은 게 트럼프였다. 그는 2011년 3월 ABC와 폭스 등 여러 방송들에 출연해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 아니라는 의혹을 퍼뜨렸다. 그러면서 보수층 사이에 비즈니스맨이 아닌 정치적인 인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당시 한 여론조사를 보면 30%가 넘는 미국인들이 오바마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고 믿었다. ‘버서 음모론’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공화당 대선 레이스의 언더독으로 평가받던 트럼프가 서서히 선두권으로 치고 나올 수 있었던 데는 버서 주장에 대한 극우의 호응이 큰 동력이 됐다.

줄기차게 버서 주장을 펴온 트럼프는 2016년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야 오바마의 미국 출생을 인정했다. 제멋대로인 트럼프의 성격을 보여주듯 별다른 해명이나 사과조차 없었다. 다만 흑인들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형식적인 제스처였을 뿐이다.

제 버릇 남 못준다더니 그가 이번에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말라 해리스의 출마자격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직접 버서 논쟁을 촉발한 것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해 제기된 황당한 주장을 두둔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논쟁을 최대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발단이 된 것은 채프먼 법대의 극우성향 교수인 조지 이스트먼의 뉴스위크 기고였다.

이스트먼은 “해리스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당시 부모의 신분에 문제가 있었다”며 그녀의 부통령 자격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미국 헌법은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얻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모의 체류신분은 상관없다. 더구나 당시 해리스의 부모는 대학 연구원으로서 합법적인 체류신분을 갖고 있었다. 하버드 법대 로렌스 트라이브 교수는 이스트먼의 주장에 대해 “지구가 평평하다고 우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트럼프는 이스트먼을 “뛰어난 법률가”라고 치켜세우면서 그의 주장에 은근히 동조하는 듯한 스탠스를 취했다. 그가 거짓정보를 퍼뜨리거나 인용할 때 단골로 하는 멘트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적당히 거리를 두는 척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시민권 음모론’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해리스의 출마 자격에 문제가 없다”며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지만 끝까지 확정적인 언급은 회피했다.

버서 논란과 관련해 트럼프가 보인 태도는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이 아니라 “아닌 줄 알면서도” 수준의 부도덕한 행태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행태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자신에게 정치적 이익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누군가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급속히 퍼져나가는 것이 음모론의 작동 구조이다.

‘버서 음모론’도 다르지 않다. 이스트먼의 황당한 주장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레딧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미 수천만 명에게 퍼져나갔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 주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버서 음모론을 퍼뜨리는 세력에게는 다름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를 유권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한, 진실과 사실은 전혀 중요치 않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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