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명의 주민이 사는 한 마을은 지난 수십년 간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여러 특혜를 누렸다. 주민들의 병역의무가 면제되고, 이 동네 46가구에게는 세금 경감 혜택도 주어졌다. 이런 것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겁나는 곳’이라고 불리는 마을에서 생활하는데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완충지대에 46가구 주민 188명 거주
대성초등에 혜택 많아 문산 학부모에 인기
음식배달 군 초소까지만… 교통불편이 단점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남북을 가르는 경계지역인 비무장지대(DMZ) 안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얼마 전 이 동네 사람들은 또 하나의 특혜를 선물받았다. 한국의 주력 이동통신사인 KT가 5세대, 즉 5G 초고속 통신 네트웍을 다른 어느 곳보다 먼저 이 마을에 설치한 것이다. “이건 바깥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보다 더 유용한 것”이라고 올해 73살의 고금식씨는 말했다. 5G 서비스가 가동되면서 고씨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손에 갖고 있는 조그만 기구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마을 이장이나 마을회관에 바로 알릴 수가 있게 됐다. “이 동네에서는 비상전화 911이 소용이 없어요. 왜냐하면 응급차량이 이 동네에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5G 전국 네트웍을 추진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면서 대성동은 하이텍 기술력을 세계와 호전적인 이웃인 북한에 알리는 가장 매력적인 후보지로 떠올랐다.
지난 1953년 휴전 후 DMZ는 전쟁 중이던 남북을 떼어 놓는 완충지대가 됐다. 2.5마일 너비로 동서로 이어지는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일대가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요새로 변하고 곳곳에 지뢰밭과 가시 철조망, 대전차 저지물이 설치되고 양쪽의 병력이 대치하면서 모두 다른 곳으로 소개됐다.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는 시도가 발각되면 즉각 총격이 퍼부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단 2개 마을만이 DMZ 안에 유지가 허가됐다. 남쪽의 대성동과 군사분계선 넘어 북쪽으로 1마일 지점에 있는 기정 “평화마을”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이웃이었던 두 마을간에는 어떤 교류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성동에 사는 올해 82세인 박필선씨는 기정 마을에 살던 친형이 아직 생존해 있는지 여부를 알 길이 없다.
전쟁 후 수십년 간 대성동과 기정마을은 남북간의 선전전에 저당이 잡힌 셈이었다. 양측은 두 마을을 통해 그들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투자해 왔다. 한국군 관계자에 따르면 아파트 외벽의 파스텔 페인팅 도색이 퇴색한 기정에는 현재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 당국은 대성동 마을에 주민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결정했지만 이곳 주민들은 다른 곳에 사는 한국 국민들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이 군사 분계선에서 불과 1,300피트 정도 떨어진 논에 나갈 때는 언제나 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또한 자정부터 다음 날 해뜰 때까지는 통행금지가 이어졌고, 매일 밤 가가호호 점호도 실시됐다.
DMZ 바깥에 사는 친구를 초대하려면 2주 전에 신청해야 한다. 차가 DMZ 안에 들어서면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으며, 병사들이 모든 방문객을 에스코트하게 되어 있다.
대성동 마을에는 체육관도, 병원도, 수퍼마켓도, 식당도 없다. 마을 사람들이 중국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차는 DMZ 출입구의 군 초소까지만 올 수 있다. 마을사람들은 주문한 음식을 여기서 가져와야 한다.
버스는 하루에 4차례 마을에 들어 온다. “교통이 제일 문제에요, 특히 나처럼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요”라고 고씨는 말했다.
새로운 5G 서비스는 지금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줄 것으로 보인다. 5G가 설치되기 전에는 양수기를 사용하기 위해 1마일 떨어진 저수지에 갈 일이 있으면 군의 에스코트를 요청해야 했다. 지금은 집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이를 신청할 수 있다. 같은 앱으로 콩밭의 스프링클러 작동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여성들은 몇 년 전부터 요가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이곳에 오려는 요가 강사가 없었다. 지금은 마을 회관의 대형 스크린에 요가 강습이 영상으로 제공된다.
이 마을에 있는 단 하나의 학교, 대성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지금은 상호 대화형식의 온라인 게임을 할 수가 있다. 벽에다 가상 타겟을 투사시킨 영상을 상영해 공치기 놀이도 하고 있다.
이같은 오락시설은 이 학교의 생존에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의 다른 시골처럼 대성 마을에 살던 많은 젊은 부부들도 대도시로 나갔다. 현재 이 학교의 학생 35명 중 7명만 이 동네 아이들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DMZ 밖에서 가장 가까운 문산에서 버스를 타고 통학한다.
이 학교는 학생 35명에 교사와 직원이 21명이나 돼 개인적인 지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다 다른 여러 헤택들도 제공돼 문산의 학부모들에게 대성초등학교는 인기학교다. 올해 1학년에 한 자리가 비자 문산에 있는 학생 16명이 전학을 신청했다.
“여기서는 바깥의 다른 학교에서는 누리는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라고 매일 문산에서 통학하는 한 6학년생은 말했다. 예컨대 특별활동으로 바깥으로 필드 트립을 나갈 때도 나라에서 모든 경비를 대주기 때문에 학생들의 부담은 전혀 없다. 또한 판문점과 대성동 마을을 관할하는 미군 부대에서는 주 2회 무료 영어 클래스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최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가 하면 지난 6월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판문점을 방문하는 등 최고위급 외교가 이어지면서 이 지역의 긴장감은 많이 완화됐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속아서는 안된다”고 예비역 육군장성인 전인범씨는 말한다. 북한군이 외부 방문객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그는 “여기는 다른 데 같은 평범한 지역이 아니다. 이곳의 평화는 병사들의 헌신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밀물과 썰물처럼 바뀌는 한반도의 긴장도를 가장 생생하게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에는 주민들이 전쟁 때 유실된 지뢰를 밟는 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심지어 북한군이 마을 주민을 납치하기도 했다. 긴장도가 높아질 때는 수시로 지하 대피소로 숨기도 했다고 올해 50세인 마을 이장 김동구씨는 전한다.
최근의 해빙 무드에도 마을 주민들은 연 2회 대피연습을 하고 있다. 매일 소음으로 괴롭히던 북한의 선전 방송은 남북 당국이 비방방송 중단을 합의한 뒤 지난해부터 중단됐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대성초등학교의 학생 2명이 꽃을 들고 나가 김정은을 맞았다. 그중 한 학생인 신재혁 군은 “북한의 독재자가 겁나기도 하고, 호기심도 있었는데 만나고 나니 마음 속에 갖고 있던 이미지가 조금 좋아지긴 했다”고 말했다. <By Choe Sang-H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