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한도 폐지 요구안’
공화의원들 무더기 반대
연방정부가 가까스로 셧다운(일시 업무중지) 위기를 모면했다. 셧다운 시한을 40분가량 넘기긴 했지만 지난 21일 연방의회에서 임시 예산안(CR)이 가결된 데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도 곧바로 서명하며 해당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것이다.
언론들은 일제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연방의회 공화당 의원들 장악력에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라는 평가를 쏟아냈다. 이번에 가결된 안에는 트럼프 당선자의 ‘부채 한도 증액 또는 폐지’ 등 요구가 아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셧다운도 불사하라’는 트럼프 당선자의 ‘명령’이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에게 먹히지 않았다는 얘기다.
AP통신·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연방 하원은 20일 오후 찬성 366명, 반대 34명으로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연방상원도 이날 0시40분 찬성 85명, 반대 11명으로 이를 가결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11시쯤 예산안에 서명했다.
이번 셧다운 위기는 지난 18일 트럼프 당선자가 여야 지도부의 임시 예산 합의안에 퇴짜를 놓으면서 시작됐다. 다음 달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마음껏 예산을 쓸 수 있도록 ‘부채 한도를 상향하거나 관련 조항을 없애라’고 요구한 것이다. NYT는 “트럼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직 재임 중이고 민주당이 여전히 연방상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 부채 한도를 올리면 공화당이 내년 (새 회기를 맞는) 의회를 장악할 때 내부 분쟁을 피할 것으로 믿었던 듯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연방정부 부채가 36조 달러라는 사실을 고려해 정부 지출 확대 자체를 반대해 온 공화당 강경파가 변수였다. 트럼프 당선자의 요구대로 ‘부채 한도 2년 유예’ 등을 담은 공화당의 수정 예산안은 내부에서 38명의 이탈표가 나오며 부결됐다. 최종 통과된 임시 예산안에서는 ‘부채 한도 폐지’와 관련한 조항도 아예 빠졌다. 다만 내년 부채 한도를 1조5,000억 달러 높이고, 정부 지출은 2조5,000억 달러 순
삭감하기로 하면서 트럼프 당선자의 요구가 일부 반영되기는 했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언론들은 “트럼프가 공화당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데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짚었다. WP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입법 담당자로 일했던 마크 쇼트 전 수석보좌관의 말을 인용해 “민주당 예산안은 ‘과도한 지출’이라고 하면서 트럼프 본인은 부채 한도를 없애 ‘더 많이 지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은 모순”이라며 “트럼프가 하원을 주무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NYT도 “트럼프와 공화당 사이의 불일치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다”며 “내년 소수의 의석 차이로 진행될 세제 및 입법 정책을 전복시킬 가능성도 보여 줬다”고 분석했다.
여야 합의를 비난하면서 이번 셧다운 위기의 방아쇠 역할을 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과도한 영향력을 우려하는 시선도 나온다. 롭 포트너 전 공화당 상원의원의 보좌관이었던 브라이언 리들 맨해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공화당이 입법 권한을 머스크에게 ‘아웃소싱’하는 한,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며 “트럼프와 머스크가 소셜미디어 게시물로 무엇이든 폭로할 때마다 공화당은 어떤 일이든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