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싫든 여성 보호” 트럼프 발언 겨냥해
이른바 '쓰레기 발언' 파장으로 대선 레이스 막판 수세에 몰렸던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반전의 승부수로 다시 젠더 이슈를 띄웠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성이 원하든 원치 않든 보호하겠다"는 성차별적 발언으로 빌미를 주자, 이를 놓칠세라 집중 포화를 퍼부은 것이다. 여성 표심 집결에 유리한 재생산권(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보장을 거론하며 국면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31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리스는 이날 오전 위스콘신주(州) 매디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의 '여성 보호' 발언을 "매우 모욕적"이라고 비판했다. 전날 불법 이민자 성범죄 등을 거론하며 "여성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는) 그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언급한 트럼프를 겨냥해 "여성이 신체를 포함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주체성, 권리,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맹폭한 것이다.
해리스는 이어 "트럼프가 여성과 여성의 주체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최신 사례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트럼프 때문에) 미국 여성 3분의 1이 '임신중지(낙태) 금지' 주에 살게 됐다"며 날을 세웠다. 대통령 재임 시절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한 트럼프가 결국 임신중지권을 헌법으로 보장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1973년) 폐기를 이끌어낸 장본인임을 상기시킨 셈이다. 오후 애리조나 유세에선 "트럼프가 당선되면 전국적으로 낙태를 금지할 것이며, 피임 접근을 제한하고 시험관 시술(IVF)도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리스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도 거들었다. 월즈 주지사는 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 "'여자들이 좋든 싫든 한다', 이게 이 남자(트럼프)가 살아온 방식"이라며 "그래서 그는 '액세스 할리우드'에 등장했고, 법정에도 서게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쓰레기'라고 지칭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실언 때문에 곤욕을 치른 해리스가 젠더 이슈를 재부각하며 노린 것은 여성 지지층 집결이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트럼프의 극단적 언사에 위협을 느끼는 유권자의 표심을 얻겠다는 의도다. NYT는 "온건파 공화당원 및 무당층 여성, 그중에서도 '교외 여성' 표심을 공략하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맞서 트럼프도 '주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도 불법 이민 문제다. 그는 이날 뉴멕시코주를 찾아 "카멀라의 (부통령) 재임 중 1만 명의 유죄 선고를 받은 범죄자, 수많은 불법 외국 갱단 등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어 뉴멕시코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불법 이민자의 범죄로 자녀를 잃은 미국인 여성의 영상도 틀었다. 뉴멕시코주는 민주당 강세 지역인 동시에, 불법 이민 문제에 민감한 국경 인접 지역이다.
대선(11월 5일)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온 이날까지도 판세는 안갯속이다. 이미 치러진 사전투표에는 총 6,365만 명이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가 트럼프보다 19~29%포인트 앞선 득표율을 기록해 압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날 보도했다. ABC뉴스·입소스, NYT·시에나대, CNN방송이 각각 실시한 사전투표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다. 다만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사전투표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만으로 승부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WP는 "4년 전 바이든과 트럼프의 격차보다 줄어든 반면, 2016년 힐러리 클린턴(전 국무장관)과 트럼프의 격차보다는 커졌다"고 짚었다.
유명인사들의 각 진영 지지선언도 이어졌다. 이날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와 금융정보·미디어 기업 블룸버그의 창립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해리스를 뽑자"고 밝혔다. 영화계에선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2003~2011년)도 지낸 ‘터미네이터'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에 이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릿 조핸슨, 마크 러팔로 등 '어벤져스' 출연진이 ‘해리스 지지' 행렬에 가세했다. ‘트럼프 지지' 대열에는 1969년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 표면을 밟은 우주비행사 출신 버즈 울드린이 섰다.
<위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