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사랑의 맑은 선율이 흐르는 곳에서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만남을 원한다.
나이 들면서 사고력과 마음이 경직되기 쉽다.
나이 들어 완고해지는 경향은 자신의 신념과 거짓된 마음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스스로 신봉하는 어리석음에 있다.
‘나이의 이김이 아니라 나이와 함께 깊어지는 것에서 아름다움은 자란다’
비르투오소(Virtuoso: 대가) 바이올린 연주자 정경화 님의 삶의 술회이다.
신선한 사유의 유연성을 지닌 표현은 삶의 온갖 풍상을 겪은 예술가로서 세계적인 정상에 이른 삶의 진솔한 고백이다.
정경화는 이미 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초절기교의 명성을 얻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로맨틱하고 격정적인 곡’ 브루흐, 시벨리우스의 연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브루흐” “시벨리우스”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브람스” “베토벤” 등 많은 명연이 있다.
정경화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과 <스코틀랜드 환상곡> 연주는 전설의 명반이다.
1972년 26세 때 독일의 거장 “루돌프 켐페”가 지휘하는 “로얄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명연주이다.
브루흐의 서정성과 낭만성의 풍부한 선율이 흐르며 고양되는 우아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정경화는 루돌프 켐페에 대해 ‘숲에 바람이 솨솨 흘러가는 느낌을 주는’ 품격이 다른 훌륭한 지휘자로 기억하고 있다.
한창, 나이에 아깝게도 요절한 켐페와 브루흐 협연은 풍부한 색채감과 강렬한 울림이 담겨 있다. 정경화의 열정적이고 매혹적인 풍만한 음색은 환상적인 낭만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다.
루돌프 켐페가 빚어내는 로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색채감 넘치는 음향은 유려하기 그지없다. 1980년대 초에 충무로 레코드점에서 정경화의 연주 브루흐의 V-C와 S-F 레코드 원판을 어렵게 마련했다. 귀가해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검은 광택이 나는 원반에서 뿜어내는 바이올린의 감미로운 음색과 격정적인 연주에 매료되어 전율했다. 정경화의 강렬하고 우아한 바이올린 소리(결)의 빛깔은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내내 엄청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와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는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그때의 감미로운 추억은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잊을 수가 없다.
1960년대에 정경화의 음악가 삶의 출발은 동양인, 여성이라는 차별과 편견을 극복해야 했다.
정상의 대가가 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에서 무엇보다 자신과 힘겨운 싸움이었다.
‘재능이란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피눈물 나는 연습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유럽 무대에 데뷔한다.
정경화는 바로크, 고전파, 낭만파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작품과 소품을 거의 다 연주 녹음했다.
작곡자가 의도했던 동기와 음악 정신을 깊이 탐색, 명석한 해석으로 음악의 본질을 살려내는데 충실했다.
숱한 바이올린 작품을 연주했음에도 모차르트는 아직도 자신이 도전할 영역이 아님을 고백한다. 비발디도 30년이 지난 2000년도에 녹음했다. 서두름이 없었던 겸손을 아는 연주자이다.
예술가로서 명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지혜로운 정신이다.
정열적인 음악인 정경화는 힘겨운 음악의 여정에서도 음악에 쏟아붓던 열정은 더 깊은 소리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고결한 영혼과 순수한 마음의 울림을 표현할 수 있는 열망을 말이다.
손 부상을 딛고 5년 만에 회복 후 “바흐”의 대작 바이올린 독주 파르티타 연주에 임한다.
자신의 완벽하고 독특한 깊은 음색으로 영혼의 세계의 오묘함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연주자로서 ‘자신의 소리의 독특함에 집중해서 인내하며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성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후학들에게 조언한다.
‘칭찬 비평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정직의 힘이 필요하다.’ ‘정직의 판단은 자신이 내려야 하는데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지만, 자신의 정직한 판단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한다.
진선미를 추구하는 예술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생명력 있는 삶의 지혜이다.
정경화의 삶이 주는 고귀한 교훈은 지금 사회에 만연한 실종된 정직의 회복이다.
정직이 회복된 삶에는 진실 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인간관계에 해맑은 웃음이 피어날 것이다.
삶의 순수한 열망이 깃드는 곳에 음악의 맑은 선율이 흐른다.
음악의 선율이 감정을 다채롭게 물들일 때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절정의 순간이 이어진다.
음악이 주는 감동에 마음이 순화되어 음악의 본질인 사랑의 정신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의 풍부한 선율이 넘치는 곳에는 삶의 매 순간 순수한 감동을 체험하는 기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