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삶과 생각] 밥 한끼, 그 고마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5-22 17:41:36

삶과 생각,민병임,뉴욕 논설위원, 밥 한끼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1980년,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잡지사에서 2년인가 3년차 기자 때 사진부 여기자와 함께 거제도로 출장을 간 일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한국에서 등대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한국의 경우 1903년 6월1일 최초로 인천 팔미도 등대가 불을 밝혔고 2년 후인 1905년 두 번째로 거문도 등대가 생겼다. 바로 이 거문도 등대를 취재하러 갔다.

거문도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 섬으로 등대는 여수 해양수산청 소속이었다. 5월 어느 날, 새벽같이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여수로 가서 항만청 소속 직원을 만났고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에 갔다. 해가 있는 동안에 취재와 사진 촬영을 다 끝내고 그날로 여수로 돌아와 항만청에서 소개받은 은퇴한 등대지기 집에서 숙박하기로 했기에 아침부터 강행군했다.

두 시간 이상 배를 타고 가서 도착한 섬에서 등대지기를 만났다. 20대 후반쯤 되는, 얼굴이 까맣게 탄 등대지기는 성실하고 소박해 보였다. 섬은 바람이 좀 불었고 나무와 풀, 들꽃들이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외딴 섬에 방목되는 흑염소들이 신기했는데 높은 바위산을 아주 잘 탔다.

원통형 백색 콘크리트 건물인 구등탑은 6.4미터 정도, 높았다. 최하단부의 등탑 건물 안의 계단을 올라서 불을 밝히는 등롱까지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 자리한 렌즈가 얼마나 큰지 마치 세숫대야만 했다. 햇볕을 받아 낮에도 눈이 부셔 바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등대지기는 취재와 촬영이 끝나는 동안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도와주었다. 취재가 끝나자 저녁 먹고 배를 타라고 간곡히 권하길래 두 여기자가 쭈빗거리며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작은 방 아랫목에 차려진 동그란 밥상 위에 고봉으로 담겨진 밥과 된장찌개, 산나물 반찬이 있었다.

편하게 먹으라고 우리만 남겨두었는데 이 밥을 누가 했을까 궁금했다. 당시만 해도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이 섬은 한번 들어오면 몇 개월을 나가지 못하니 고기나 생선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두어 달에 한 번 들어오는 보급선이 폭풍이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해안에 접경 못할 테니 쌀이 떨어지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밥을 거의 다 먹었는데 부엌 쪽으로 난 문으로 슝늉이 들어왔다. 등대지기의 아내가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근처 산과 들판에서 나뭇가지를 끌어 모아 가마솥 밥을 해주었고 방이 좁으니 부엌에 내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보았다. 윗목에 이불을 덮은 뭔가가 있었다. 태어난 지 3일 된 아기였다. 등대지기 아내는 출산 3일 만에 일어나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나무를 때어 밥을 하고 국을 끊인 것이다.

좀 놀라긴 했지만, 20대 중반으로 미혼인 우리들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조차 못했다. 지금이라면 밥을 먹지 말고 왔어야 했다. 그래야 막 출산한 산모가 쉴 수 있을 텐데 그때는 왜 그것이 당연한 대접이라고 여겼을까.

등대지기는 절대로 낭만적인 직업이 아니다. 잠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는 극한 직업이다. 40년 전이니 낙후된 장비에 수동식이었을 것이다. 일출 직전에 소등하고 일몰에 직접 불을 켜야 하고 불빛이 맑아야 빛이 멀리 나가니 매번 등탑을 청소해야 했을 것이다.

그 다음 달 잡지의 앞면에 컬러 6페이지 정도의 등대를 중심으로 한 대자연의 풍경을 다룬 화보 기사가 났다. 그때 내가 쓴 기사를 읽을 길이 없지만 혹여나 등대지기의 삶에 낭만이란 단어 한 자라도 들어가지 않았기를 빈다. 그 몇 년 후 미국으로 와서 신문사에서 35년 세월을 보내며 기자로서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섭섭하고 건방지고 오만했을 것이다.

그 밥 한끼만 해도 그렇다. 그들의 며칠 식량을 두 여기자가 한 끼로 다 먹었을 수도 있었다. 거문도 등대 기사가 실린 잡지 한 권은 보내줬을까? 기억이 안 난다. 우리는 때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절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잊고 산다. 지금이라도 느끼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는 상대방이 내게 베푼 배려를 하나씩 갚으면서 살아야겠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취업허가 갱신 접수증, 계속 일해도 된다는 보증서는 아니다

케빈 김 법무사 “만료 전에 갱신했으니 계속 일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취업허가증을 갱신하는 이민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신청서를 제때 제출했고 접수증까지 받았다면 자신의 의

코윈 애틀랜타, 청소년 약물 예방 및 정신건강 세미나 개최
코윈 애틀랜타, 청소년 약물 예방 및 정신건강 세미나 개최

의료·법률 전문가와 현직 경찰 수사관 참여청소년 약물 문제▪법적 책임, 현장경험 공유11월 7일 오후 2시, 둘루스 그레이홀 개최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애틀랜타 지회(

조지아주, 중간선거 사전투표자 신기록
조지아주, 중간선거 사전투표자 신기록

29일 오후 2022년 투표 기록 넘어서30일까지 사전투표자 270만명 이상 조지아주가 사전 현장 투표 기간을 하루 남겨둔 상황에서 2022년 중간선거 당시의 사전 현장 투표 기록

귀넷 경찰, '할로윈 데이' 아이 안전수칙 발표
귀넷 경찰, '할로윈 데이' 아이 안전수칙 발표

밝은 의상 착용, 손전등 등 광원 지참 꼬마 악마, 마녀, 좀비, 뱀파이어 분장을 한 아이들이 토요일 밤 귀넷 카운티 주택가를 누빌 예정인 가운데, 카운티 경찰이 학부모들에게 아이

[행복한 아침] 오른 손, 왼 손의 도움닫기

김 정자(시인 수필가)    도마질에 심하게 열중한 것도 아닌데 손가락에 아주 가볍게 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얼른 지혈을 하고 반창고를 바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나머지 조리과정까지

애팔래치고 총격범 가석방 없는 종신형 확정
애팔래치고 총격범 가석방 없는 종신형 확정

조지아 대법원 상고 기각 조지아주 대법원이 애팔래치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콜트 그레이의 새로운 형량 선고를 위한 상고를 기각했다.법원 문서에 따르면, 그레이가 요청한 새로

애틀랜타 공항, 결항·지연 적은 '톱5' 우수 공항
애틀랜타 공항, 결항·지연 적은 '톱5' 우수 공항

취소율 1.24%, 심각한 지연 1.25% 애틀랜타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을 보유하고 있지만, 새로운 조사 결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공항 중 하나이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컨

아기 차량 방치 숨지게 한 엄마에 '할로윈 참여'
아기 차량 방치 숨지게 한 엄마에 '할로윈 참여'

귀넷 법원 제한적 허용 귀넷 카운티 법원이 16개월 된 아들의 차량 안 방치 사망과 관련해 2급 살인 및 아동 학대 혐의로 기소된 어머니 데자 콜먼에게 거주 단지 내에서 할로윈을

한인부동산협회 골프대회로 기부금 모금
한인부동산협회 골프대회로 기부금 모금

수익금 연말 파티서 기부 예정 조지아한인부동산협회(GAKARA·회장 레이첼 김)는 지난 28일 오전 10시 스와니 베어스베스트 골프장에서 제5회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에

치솟던 조지아 차보험료 잇따라 인하
치솟던 조지아 차보험료 잇따라 인하

41개 보험사…최대10.1% 인하 360만건 영향…5억불 절감효과 지난 수년간 가파르게 상승했던 조지아 자동차 보험료가 올해 들어 대거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WSB-TV가 주정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