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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서울 강남을 스케치하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6-26 14:05:26

삶과 생각, 윤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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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메릴랜드)

오월이 오면 몇 년에 한 번씩은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아들 집에서 볼일도 보고 국내여행을 즐겼는데, 이번에는 수험생 손녀를 위해 거처를 호텔로 정하다보니 우연히 서울 강남의 한복판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강남 1번지 대로에 마치 뉴욕의 마천루처럼 높이 치솟은 빌딩숲속에 자리한 작고 아담한 이 호텔은 매일 쓸고 닦고 어느 곳 하나 청결하지 않은 곳이 없다. 무엇보다 아침식사가 무료 제공되고 교통이 사통팔달이라 끊임없이 국내외 여행객들이 들락거리며 심심찮게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한나절 거리에 나서면 젊은이들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이들의 캐주얼한 의상에서 나도 모르게 한때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대로를 바쁘게 오가는 청춘남녀들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걷다 종종 마주 오는 사람과 정면충돌하는 실수를 할 때면 실소가 절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오전 열한시 반쯤 되면 빌딩의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은 크고 작은 식당들이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들어찬 자리를 차지하고 허겁지겁 식사하느라 왁자지껄한다. 한 그룹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 연이어 또 다른 한 그룹이 떼 지어 들어와 식당 안은 시끄럽지만 활기에 넘친다. 

점심 메뉴로는 맛보다는 단숨에 먹어치울 수 있는 초간편 식단이 인기를 끈다. 이들의 활달한 모습이 오늘날 N세대가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고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은 오직 강남의 젊은이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랄까?

성형기술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라답게 거리에는 성형외과 간판이 즐비하고, 높은 빌딩 일층에는 스타벅스나 파리바게뜨의 간판이 유난히 눈에 뜨인다. 스타벅스나 파리바게뜨 안으로 들어가면 밖의 거리가 내다보이는 상석(?)을 치지하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조용하고 안락한 구석진 자리들도 노트북을 펼치고 냉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시켜놓은 채 무언가를 부지런히 두들기는 젊은이들이 장시간 앉은 자리에서 뜰 줄을 모른다.

호텔에 있는 동안 우리가 겪은 가슴 서늘한 두 사건이 있다. 늦은 밤 갑자기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며, 실내방송을 통해 화재가 발생했으니 빨리 대피하라는 것이다. 급히 나이트가운만 걸친 채 복도로 나가보니 각 방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영문을 모른 채 우왕좌왕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황급히 뛰어온 호텔종업원의 말인즉, 욕실에 습기가 차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했으니 안심하라는 전갈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두번째 해프닝: 새벽잠에 잔뜩 취해 있노라니 갑자기 전국 재난방송이 요란하다. 비상사태가 발생하였으니 어린이와 노약자는 대피소로 즉시 대피하라는 것이다. 마치 이북에서 날아온 미사일이 곧 서울 하늘에서 폭발할 것 같은 다급한 방송이다. 드디어 전쟁이 터졌나 하는 긴장이 고조될 쯤 미사일이 아니라 미확인 우주로켓발사란 정정 보도를 듣고서야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는 서초구청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마치고 나오다 근처에 잘 다듬어진 공원을 산책하였다. 마주친 철거민 생존권 보장하라는 현수막, 이마에 붉은 끈을 두른 데모대원들의 구호와 확성기 소리가 사방에서 귀를 찌른다. 구청에서 정성껏 가꾼 예쁜 화분들이 줄지어 화사하게 도로변에 걸려있는가 하면 푸른 나무숲이 시민들의 숨통을 한층 트이게 해주고 있건만, 왜 이리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불만의 소리는 잦아들지 않는지….

호텔 조식시간에 만난 시카고에서 온 70대 초반 노부부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서의 여정은 마치 꿈속을 거닐다 돌아가는 기분인데, 흥분 가득한 첫날은 마음이 벅차올라 꿈 속 같고, 차츰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왠지 기분이 저하되는가 싶더니 돌아갈 때쯤은 다시 이방인이 되어 냉혹한 미국의 현실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착잡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낳은 자식은 미국인으로 살지언정 언젠가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 여생의 삶을 보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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