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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게으름 유정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6-09 08:52:55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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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다정도 병이라 했다. 유정도 지나치지 않아야 애틋한 멋스러움을 간직할 수 있을 터인데 나이테 눈금 사이로 게으름 유정이 은근슬쩍 끼어드는 이즈음이다. 얼마 전만 해도 나이 들어감을 새로운 경지를 접해보는 또 다른 설렘이라 우기기도 하고 은혜로 받아들이자고 다짐까지 했었는데, 글씨가 어른거려 돋보기는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있어야 하고 퇴행성 관절염을 선두로 노후증상들이 절친처럼 복합적으로 진행중이다. 

노년임을 인정하면서도 친정엄마가 떠오르면 아직은 엄마의 딸로 남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야무지게 붙들곤 한다. 어머니께서 떠나신 나이를 손수 살아보고 나서야 세세히 일러주지 않으셨던 일상 불편이며 하루가 무섭게 야금야금 닳아가는 육신의 비대칭까지 몸소 겪은 후에야 엄마 고뇌와 격통이 게으름이 아니었음을 절통하게 된다. 지인 분으로부터 얼굴 좀 보자는 전갈을 받고도 다음으로 미루는 게으름까지 팬데믹이 불러들인 안주에 길들여진 것으로, 자연스런 노화 현상으로 돌리는 뻔뻔함이 게으름 유정을 부추기고 있다. 어쩌면 게으름을 정당화 시켜가며 느긋하게 즐겨보자는 선동에 고취된 듯 하다. 게으른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자부심에 흠집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실없는 자만을 부끄럽거나 초라 함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미화 백달러 지폐 속의 주인공 벤자민 플랭클린이 남긴 명언이 있다. ‘오늘의 하루는 내일의 두 배의 가치가 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했는데, 나이 탓으로 돌리는 핑계거리가 나도 몰래 싹트고 있었나 보다. 재택에 길들여진 게으름이 기지개를 켜고 일상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은 안도감이 자리잡은 지도 한참인데 오늘 아니래도 내일 하면 될 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으름 탈피를 위한 묘책을 개발해야 될 것 같다. 게으름이 구태의연으로 변질되기 전에 자기 개발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눔의 기회를 지팡이를 짚더라도 적극적 동참을 해볼 작정이긴 한데, 글쎄다. 일상 가운데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일로 마무리 해내도록 최선을 다해보자. 게으름뱅이는 삶의 부끄러운 모습이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핑계와 변명이 잦아지기 시작하면 게으름 초기 증상이다. 게으름은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있는 실천을 외면하는 것이다. 최선이란 것도 눈금 한계를 자신이 설정해 놓은 것이라서 게으름이 깊어지고 무르익을 무렵에야 겨우 알아챌 수 있을까말까이다. 인내와 전력투구 없는 한계를 쉽고 넉넉하게 눈금긋기를 했기 때문이다. 변명이나 핑계도 알고 보면 자신의 편의대로 만든 한계를 정당화하려는 속셈이 숨겨져 있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요 게으름의 자책을 숨기려는 이기적 비열함의 극치다. 열심을 내고 부지런을 떨어야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게으름 유정에서 탈출해 보자. 여건이 허락되지 않음에도 웬만한 한계 쯤은 극복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남은 날까지 최선을 다할 각오를 아낌없이 칭찬해주자. 집안 일에는 부지런하지만 바깥 일에는 한없이 게으른 분이 있는가 하면, 바깥 일에는 열성적이지만 집 일은 마냥 미루고 대충 밀고 가는 분도 계신 터라 게으름이란 분기점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도 있겠다싶은데 하나님 앞에서의 게으름은 용서를 구하는 것 만으로 관용의 상쇄를 얻을 수 있으려나, 고해의 아룀으로 꿇은 무릎을 쉽게 풀 수가 없다.

내가 겪어온 게으름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본질적 성품에서 기인 된 것이 아니라 준비 부족이 빚어낸 모호한 기피에서 파생된 불확실함으로 인한 포기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해서 게으름을 질책하거나 매도해서도 아니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보다 어떠한 상황이 우리를 게으름으로 불러들이며 게으름에 발목을 잡히는 것인지 고찰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게으름에 붙들려 버린 모습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에 대한 열망이 내재되어 있다. 숨겨진 가능성이나 여태껏 꺼내 보지 않았던 재능을 발산하고, 풀어내고 싶은 동경이나 갈망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 본성 저력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싶은 본질적 초월적 관념은 기회를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이다. 해서 게으름을 밀어내고 부지런하게 해낼 수 있는 근원적 추구의 본질을 찾아 내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다.

게으름 유정은 한 때의 낭만으로 충분하다. 사실 게으름은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바닥났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나 건강 문제, 주변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크고 작은 염려와 불안으로 집중력이 분산되거나 기능적 순환 장애가 발생했을 때 생각 향방이 조화를 잃어버린 혼란에서 기인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게으름과 대적해가며 게으름에 떠밀리지 않는 지혜로운 삶을 향한 질주를 꿈꾸어 본다. 게으름 유정과 결별을 고하기 위해. 계절이 바뀌는 자연 질서도 게으름 없는 엄숙에 올인하며 정착되어왔는데 게으름과 더욱 친숙해질 한 더위가 속절없이 찾아 들고 있다. 

게으름이 동행하고 싶어하는 유정에는 눈길도 주고 받지 말아서 침묵으로 게으름 유정을 다스려보자고 경고 주의보라도 발령해볼 참이다. 나이 들어버린 노구의 눈치를 살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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